제1차 세계대전 초기인 1914년 러시아제국 군이 타넨베르크(현 폴란드 북부)에서 독일 군에 거의 섬멸됐다. 23만 명의 대군으로 15만 명의 독일 군에 비해 수적 우위에 있었지만 군 장성 간의 알력으로 어이없이 각개격파됐다. 타넨베르크 전투는 포위 섬멸전의 전형으로 고대 로마가 수적 우위에도 남부 이탈리아에서 카르타고의 한니발에 대패했던 칸나에 전투와 비견된다. 러시아제국이 1917년 3월 혁명으로 붕괴된 것은 이 당시 군부 분열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많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바그너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용병 반란’에 즈음해 “러시아가 1차 대전을 벌였던 1917년에도 등에 칼을 꽂는 공격이 가해졌다”고 한 말의 뿌리를 찾아가면 이 사건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후신인 연방보안국(FSB) 등 정보기관과 군, 경찰, 군산 복합체 출신 인사들을 대거 권력 요직에 기용했다. 이른바 ‘실로비키’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 또는 ‘무관(武官)’ 등의 의미를 가진 용어다. 이들은 푸틴의 장기 집권을 위해 정적이나 비판적인 언론을 탄압하는 등 비민주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푸틴은 실로비키에 충성 경쟁을 시키는 한편 이들 사이의 갈등과 반목을 유도하며 권력을 유지하고 잠재적인 도전자들을 제거해왔다.
이러한 정치 체제는 평시에는 효과적이지만 전쟁의 시기에는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프리고진의 반란은 멈췄으나 다른 도전자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보리스 옐친 정부의 민영화 때 정부 자산을 불하받아 신흥 재벌이 된 ‘올리가르히’는 푸틴 집권 이후 상당수가 숙청됐고 생존자들은 푸틴에게 협조하고 있지만 권력에 근접하지는 못했다.
독재국가는 겉으로는 매우 강해 보인다. 그러나 불신과 비효율, 정치적 부패 속에 체제 내부에 파열음이 생기고 끝내 붕괴의 길로 접어들었다. 북한에서도 권력 내부의 분열과 민심의 이반은 언제든지 표출될 수 있다. 한반도 주변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른 치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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