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내 링크는 서울경제신문 홈페이지에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물건을 고쳐쓰는 이야기를 2회 연속 보내드렸습니다. (이건해 작가님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 리뷰, 아이폰 배터리 교체 워크숍 후기) 오늘은 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중요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에디터들도 그냥 기업들이 만들어주는 전자제품들을 별 생각 없이 써 왔는데, 지난달 23일에 서울환경연합이 주최한 '수리할 권리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그동안 순진했구나" 싶은 대목이 많았습니다.
스마트폰에 담긴 고통
우선 왜 자꾸 수리수리 운운하면서 고쳐 쓰겠다고 하냐면 말입니다. 옷이나 신발은 소비자가 의지가 있고 방법을 익히면 고쳐 쓰기가 쉽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구, 집까지도 고쳐 쓸 수 있고요. 그런데 전자제품은 기업이나 전문가들의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 전자제품은 보통 구조가 복잡하고, 비싸고, 정해진 부품이나 도구가 필요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버려지는 전자폐기물이 2019년 기준 전세계 5300만톤으로 5년 사이 21%나 늘었다고 합니다. 2030년엔 7400만톤까지 늘어날 전망. 이 폐기물은 각국에서 처리되는 비율이 17%뿐.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저개발국가로 수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폐기물에는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이 포함된 경우가 많은데 전세계 1250만~5600만명(여성, 어린이도 포함)으로 추정됩니다(WHO 보고서 한글 번역본은 여기).
당장 그날의 식사를 위해 열악한 코발트 광산과 전자폐기물 처리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KBS 환경스페셜에서 너무 잘 담아주셨습니다. 사실 이 기사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다 다루고 있어서 환경스페셜 한 편만 보셔도 충분하실 겁니다.
게다가 전자제품은 애초에 환경을 오염시키면서 채굴한 다양한 광물질로 만든 부품을 쓰기도 하는데, 이걸 그냥 버리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자원도 자원이지만, 유럽환경국(EEB)에 따르면 유럽 내 모든 스마트폰을 1년씩만 더 써도 2030년까지 매년 210만톤의 탄소배출량(=100만대 넘는 자동차가 1년간 배출하는 양)을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영원히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는 없으니 자연스럽게 고쳐서 오래 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데...당연히 기업마다 서비스센터가 있지만, 비싸고 오래 걸립니다. 그런데 기업이 수리 매뉴얼을 제공하고, 부품도 팔고, 도구도 빌려준다면? 그리고 공식 서비스센터가 아닌 곳에서도 마음 놓고 수리를 맡길 수 있게 된다면? 그때부턴 해볼만할 겁니다.
수리권? 유럽은 이미 법으로 보장
그리고 이런 일들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번 레터에서도 언급했지만 애플은 미국에서, 삼성전자는 우리나라와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서 '자가 수리 키트'를 제공 중입니다. 유럽을 중심으로 '수리할 권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고 이미 법과 제도에도 반영이 되는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프랑스는 2021년부터 전자제품에 '수리 가능성 등급'을 표기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수리가 어렵진 않은지, 관련 정보나 부품은 잘 제공이 되는지 등 등급을 매겨서 제품에 붙여버리는 겁니다.
그랬더니 삼성전자가 자가수리 매뉴얼을 공개하고 곧바로 8점대(사진)를 받는 쾌거를 달성했습니다. 법이 바뀌면 기업들도 누구보다 빨리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소비자뿐만 아니라 독립 수리점(=카센터)에도 각종 수리 정보와 수리 장비 판매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차량 제조사의 공식 센터에 찾아갈 필요 없이 가까운 카센터에 가면 되는 겁니다. 물론 브랜드별, 모델별 '잘 고치는 센터'를 선호하는 소비자들도 있겠지만 소비자 선택권 자체가 넓어진 셈입니다. 이밖에 정말 많은 사례들이 토론회에서 소개됐는데 궁금한 분들은 유튜브 라이브 다시보기 추천드립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어련히 잘 만들어 놨겠지", "수리할 '권리'까지 얻어내야 할까?" 싶었는데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이번 기사까지 '수리권 3부작'을 꾸역꾸역(?) 전해드린 건 독자님도 용기를 얻었으면 해서입니다. 앞서 이건해 작가님의 <아끼는 날들의 슬픔>을 읽으면서 고쳐 쓰고 아껴 쓰는 삶을 조금이라도 따라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었습니다. 마침 수리권 토론회에서는 왜 수리를 해서 오래 써야 되는지, 왜 우리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아이폰 배터리 워크샵에서 실제로 뚝딱 배터리를 교체하는 분들의 모습을 보고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고치고 아끼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타트업이나 단체들도 요즘엔 꽤 많아졌는데 앞으로 기사에서 차근차근 소개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리수리다수리 팀에서 추천한 '리페어 컬처'란 책도 있습니다. 오늘 기사는 유난히 숙제를 잔뜩 안겨드리는 느낌이지만 기억해 뒀다가 힘 닿을 때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관련기사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