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이 건강보험 적용 때까지 고가의 항암제를 제한없이 무상 지원한다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리면서 향후 급여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는 10일 기자간담회에서 “1년에 7000만 원이 넘는 약값이 부담돼 치료를 받지 못하는 폐암 환자들이 여전히 많은 줄로 안다”며 “렉라자를 포함해 2개 제품이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지만 급여 등재되지 않으면 선택지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내부 논의를 거쳐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EAP)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내 31번째 신약으로 허가 받은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는 폐암 세포의 성장에 관여하는 상피세포성장인자(EGFR) 수용체의 신호 전달을 방해해 폐암 세포의 증식과 성장을 억제하는 3세대 표적항암제다. ‘이레사’(성분명 게피티닙), ‘타쎄바’(성분명 엘로티닙) 등 1, 2세대 약물을 복용하다 T790M 내성이 생긴 환자에게 2번째 옵션으로 투여되어 왔는데 최근 1차 치료제로 추가 승인을 받으며 사용 범위가 넓어졌다.
렉라자와 같은 3세대 약물은 뇌혈관장벽(BBB)에 대한 투과도가 높아 뇌전이 환자에서도 종양억제 효과가 뛰어나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8년 12월 렉라자와 동일한 기전의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가 폐암 1차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지만 여전히 비급여라 1년 약값만 7000만 원이 넘는다. 타그리소는 올해 3월 다섯 차례 시도 만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지난달 심평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상정이 불발되면서 급여 등재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경쟁 약물의 건보 적용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유한양행이 무상공급을 선언하면서 관련 시장 판도가 뒤집힐 공산이 커졌다. 타그리소는 이미 미국, 유럽 등 해외 여러 국가에서 판매 중이라 정부와의 협상 과정에서 약가인하 여력이 크지 않다.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약가 결정이 가능한 유한양행 입장에서는 원점에서 급여 등재 속도전을 펼칠 수 있게 됐다. 경쟁사가 약평위와 건강보험공단과의 약가 협상,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등의 절차를 밟는 동안 의약품을 무상 공급하며 폐암 1차치료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업계에서는 3세대 약물이 급여 등재에 성공할 경우 국내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시장이 기존보다 3배가량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타그리소·렉라자는 비소세포폐암 2차 치료로 지난해 약 1226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선발매된 타그리소 매출이 1065억 원으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약가가 저렴한 렉라자가 등장한 만큼 정부가 건보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더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며 “이례적으로 렉라자가 먼저 급여 등재된다면 시장 판도가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