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전세사기에 동원되는 이른바 ‘업감정’(Up감정·부동산 감정 평가액을 부풀리는 수법)이 대대적으로 이뤄지는 정황을 포착해 관련 일당을 무더기 적발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해 1월부터 올 2월까지 업감정을 요구한 브로커 18명과 이에 응해 감정평가서를 발급한 감정평가사 24명을 감정평가법 위반 혐의로 검거해 전날 송치했다고 20일 밝혔다. 업감정은 무자본 갭투기 수법의 전세사기에서 흔히 등장하는 범행이다. 감평평가사와 짜고 빌라 등 부동산의 평가액을 부풀려 이를 근거로 전세금을 올려받아 사기 일당의 수익을 늘리는 데 쓰인다.
이번에 적발된 컨설팅업자 등 전세사기 일당은 감정평가 브로커들에게 업감정을 의뢰하고, 브로커들이 인터넷 사이트나 카카오톡 채널, 네이버 엑스퍼트 등 SNS 채널 또는 지인 소개로 연결된 감정평가사에게 희망하는 평가금액을 요구하는 수법을 썼다.
원하는 금액의 감정평가를 받아오면 브로커들은 전세사기 일당에게 수수료 명목으로 건당 100만∼1000만 원을 받았다. 감정평가사들은 감정평가 법정 수수료의 일정 비율을 감정평가법인에서 성과급으로 받았다.
브로커가 요구하는 평가금액을 잘 맞춰주는 감정평가사는 브로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호황’을 누리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정평가사 A씨는 브로커 B씨에게 “주택도시보증공사 보증보험건은 주변에 데이터가 없는 거 아니면 제가 어떻게든 로직을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필요한 수준 다 맞춰드린다”며 “필요한 금액을 명확히 미리 알려주면 좋다”고 제안했다.
이에 B씨는 “저희는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보니 최대금액으로 말씀드렸는데 앞으로는 금액을 설정해 말하겠다”고 답했다.
감정평가사 C씨는 또 다른 감정평가사 D씨에게 “임대사업자고 이번에 전세 갱신(1억 5000만 원)했는데 금액이 아주 소소하지만 1억 5000만 원 이상 금액이면 되는 것 같다”고 소개해주기도 했다. D씨는 “저희 그런 거 한 달에 80∼100개 한다”고 답했다.
이들 업감정 일당은 경찰이 수도권 ‘빌라왕’의 배후로 지목돼 구속기소된 신 모 씨를 수사하던 중 덜미를 잡혔다.
경찰은 또 신 씨가 관리한 임대사업자 우 모 씨를 구속해 지난 7일 송치하고 이에 가담한 분양업자·부동산업자 등 공범 33명을 지난 13일 불구속 송치했다. 우 씨는 2019년 6월부터 2021년 5월까지 서울 강서·양천구, 인천 등지에서 주택 28채를 매수한 뒤 세입자 28명을 상대로 보증금 59억 원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사기)를 받는다.
경찰 관계자는 “자격증 부당 행사, 업무 관련 대가를 제공한 브로커에 대한 처벌 규정 부재 등 법률개정·제도개선이 필요한 사안은 국토교통부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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