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힘이 세다. 그중 누군가를 혐오스럽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짓는 ‘나쁜 말’은 특히 힘이 세서 호명 당한 당사자를 마치 감옥처럼 가둔다. 이를테면 무개념 엄마를 ‘맘충’이라고 부른다거나 전문성 없는 기자를 ‘기레기’로 비하하는 일을 떠올려 보자. 이때 부르는 자와 불리는 자 사이에는 일종의 권력관계가 만들어진다. 부르는 자는 손쉽게 멸칭을 입에 올리지만 불리는 자들은 순식간에 뒤집어쓴 혐오에 놀라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결백을 증명하고자 전전긍긍한다. 이런 언어의 감옥을 이용하는 전략이 바로 ‘프레임 씌우기’다.
7월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가 주최한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 등장한 ‘시럽급여’는 이런 나쁜 말의 전형이다. 비자발적 실직으로 실업급여를 받던 많은 사람들이 이날을 기점으로 달콤한 보너스를 악용하는 부도덕한 ‘시럽급여’ 수급자가 됐다. 우리나라처럼 일자리로 자신을 증명하고 존중받는 ‘일 중심 사회’에서 실업이란 의심할 여지없이 괴로운 경험이다. 그런데도 극히 일부의 사례를 가져와 “(수급자들이) 해외여행을 가거나 일할 때 자기 돈으로 살 수 없던 샤넬 선글라스를 사며 즐기고 있다”며 ‘시럽급여’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특히 안타까운 건 ‘시럽급여’라는 말이 국민의 고용과 노동을 책임지는 정부와 정치인에게서 나왔다는 점이다. 사회보험 등 많은 복지 정책에서는 부정 수급 문제가 종종 발생하고 성실한 납세자들은 불만을 토로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정부는 사회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하건만 ‘시럽급여’라는 편견 가득한 언어로 도리어 갈라치기를 시도하다니. 아무리 좋은 목적을 위해서였더라도 이해받기 어렵다.
실제로 ‘시럽급여’라는 나쁜 말은 빠르게 번지며 사회 분열에 공헌하고 있다. “부정 수급자가 많은 건 사실” “조금 일하다 관두고 시럽급여로 노는 사람이 많다”는 비아냥과 거짓이 온 사회를 떠돈다. 부정 수급이 결코 쉽지 않으며 대부분의 부정은 계약직 고용을 선호하고 계약 연장을 꺼리는 회사 측의 이슈로 늘고 있다는 것을 정부가 모를 리 없다. 근로 의욕이 떨어진 것도 최저임금보다 높은 실업급여 문제가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사실 역시. 혹시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를 ‘나쁜 개인’ 탓으로 돌리려는 목적이 있었을까. 나쁜 말 탄생의 배경에 나쁜 의도가 있지는 않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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