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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 '동쪽의 지혜'를 찾아…서양 지식인의 철학 여행

■방랑하는 철학자

헤르만 폰 카이저링 지음, 파람북 펴냄





“나는 사고방식을 밑바탕부터 혁신하고 가능한 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과 과거의 나 자신을 잊어버릴 만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열대 기후와 인도 사람의 의식, 중국인의 생활방식과 그 밖의 다른 많은 것과 부딪혀 보고 싶었다.”

신간 ‘방랑하는 철학자’는 독일계 철학자 헤르만 폰 카이저링이 1911년부터 1912년까지 약 2년에 걸쳐 인도와 동아시아, 북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세계 일주를 하면서 느낀 철학적 사색을 전하는 여행기다. 이 책이 다른 여행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철학에 이해가 높은 저자가 철학적으로 여행지를 바라봤다는 점이다. 책의 초반부에서 저자가 세계 여행을 떠난 이유로 각 나라의 의식에 부딪혀보고 싶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책은 저자가 여행한 경로에 따라 인도, 극동, 중국, 일본, 미국 등으로 크게 나눠서 서술됐다. 저자는 인도의 람스와람에서 힌두교의 정수를 고찰한다. 람스와람은 바라나시와 함께 힌두교의 최고 성지로 손꼽히는 사원이다. 순례자, 승려 등이 새벽 한 시까지 줄 지어서 사원에서 절을 한다.

이 모습을 통해 저자는 힌두교를 통해 인도가 물질보다 정신을 중심으로 하고 그에 따른 사고를 변화해 경험으로 체득하는 철학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유럽인들이 세계를 물질을 기준으로 보고 머리로 이해하면서 살아가는 것과 다르다. 서양인의 눈에는 힌두교도가 비현실적이고 현실에서 실패한 사람들로 인식되는 이유기도 하다.



일본을 건너가서는 일본의 불교가 인도의 것과 또 다르다고 얘기한다. 일본 고야산 산봉우리에 위치한 절을 방문한 저자는 그곳 수도승이 기도하기보다 싸우는 모습에 가깝다고 봤다. 그에게 일본의 수도원장은 마치 중세 기독교 군주와 같았다. 그는 일본의 불교가 유교의 실용성을 받아들이고 조상신을 숭배하는 문화, 기사도 문화와 결합한 데 따라 수도승의 모습도 인도와 다르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분석은 일본 시민들이 절에서 내려와 일본 역사에서 유명한 장군, 고관 등의 석비, 추모비 앞에서 감흥하는 모습을 보인 데서도 이어졌다. 절에서 불교의 기적 등에는 신뢰를 보이지 않았던 일본인을 통해 일본에서는 개인과 신, 신앙보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러일전쟁 때 일본이 러시아 제국을 무찌를 수 있었던 것도 일본 특유의 애국심 문화가 작동한 셈이다.

저자가 세계 여행을 하던 시점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서구 열강을 중심으로 제국주의 기조가 강한 시기였다. 이에 반해 책에서는 무조건 서양의 문화, 철학이 옳고 진리라는 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저자는 최대한 개방적인 자세로 동양을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한다. 독일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철학을 공부한 그의 배경에서 오는 한계를 뛰어넘는다.

다만 그의 시각으로 동양의 철학을 사유한 탓에 성급한 일반화로 보이는 내용들도 일부 있다. ‘일본인은 인도의 종교인이나 독일의 철학자처럼 깊이 사색할 줄 모른다’, ‘전통적인 인도 사람들은 애국심이 없다’고 서술한 부분은 책을 읽는 독자들을 멈칫하게 한다. 대신 철학자로서 저자가 여행하는 경로를 따라가면서 독자들도 새로운 시각, 관점을 접할 수 있다. 3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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