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부실시공 아파트 문제는 잘못된 시공 관행을 바꾸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현장에 만연한 불법적인 도급, 비용 절감, 시공 압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부실시공 아파트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잘못된 시공 관행이 개선되지 않으면, 어느 아파트도 부실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노동계와 정부 갈등 탓에 제대로 관행 개선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2일 민주노총 건설노동조합에 따르면 건설노조는 9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심성정 정의당 의원과 아파트 부실시공 원인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당시 건설노조가 토론회에서 공개한 7~9일 건설현장 근로자 2511명 대상 설문에 따르면 아파트 부실시공 원인(중복응답)으로 불법도급이(73.8%) 1위로 꼽혔다. 이어 무리한 속도전(66.9%), 감리 부재 또는 부실 감독(54%), 미등록 이주노동자 착취(52.1%)가 꼽혔다.
그동안 노동계는 건설현장의 잘못된 관행을 위해 다단계 재하도급을 막고 현장 인력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를 이어왔다. 정부가 건설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둔 채 노동조합의 불법만 단속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올해 6월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이 발표한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죽이기 문제점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건설현장은 발주처-원청-하청-재하청(십장 또는 팀반장)-건설노동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재하도급이 만연하다. 이는 불법이다. 합법적 도급 구조는 발주처-원청(일반건설사)-하청(전문건설사)-건설노동자다.
다단계 재하도급의 문제는 최저가 입찰제 탓에 하위 단계로 내려갈수록 낙찰금액이 준다는 점이다. 수익을 내야 하는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최소 인원으로 최대한 빨리 공사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다단계 재하도급 구조는 사고를 예방하거나 사고가 일어나면, 어느 단계가 책임이 있는지 가리기 쉽지 않다. 이는 다시 사고를 일으키는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건설 현장 근로자가 처우가 열악하고 현장에 외국인 노동자가 많다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외국인 노동자로는 현장에서 필요한 숙련공 수요를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건설노조 설문에 따르면 골조 부분 근로자에게 숙련공이 될 수 있는 최소 기간을 묻자 34.4%는 3년 이상, 31.3%는 5년 이상을 꼽았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현장에서 부실시공을 견제하고 품질을 높일 숙련공 보다 빠른 속도전을 치르면서 무조건적인 ‘물량죽이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설 현장 근로자가 일용직으로 채용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점은 건설업의 고질적인 문제다. 이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맞물려 일터의 안전을 저해할 수 있다. 근로자가 한 현장에서 오래 일하지 못하다 보니 근로자가 만들 현장의 안전 문화가 자리 잡기 힘든 것이다. 예를 들어 타워크레인직종 건설 근로자는 타워크레인 임대사와 고용계약을 체결하지만, 계약 종료 후 다른 공사현장에서 일할 때까지 실업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지나친 영리 추구로 이 구조를 만든 기업(건설사 등)뿐만 아니라 근로자도 일정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제대로 된 건설노조를 가리지 못한 상황이 건설업 불법을 낳는 한 구조적 원인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 노조는 현장을 순회하는 방식으로 조합원을 관리한다. 그런데 현장에 조합원이 없는데도 건설사에 노조 전임비를 요구하는 일부 '가짜 건설노조'가 있다. 이 노조는 기존 노조에 대한 불만으로 노조를 만들거나 본인 소유의 건설기계를 현장에 투입하기 위해 노조를 설립한다. 현재 건설노조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조직은 약 20여개다. 중앙연구원 보고서는 “건설업의 구조적인 원인은 건설업에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 고용불안(일용직), 산업재해를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건설노조를 비롯해 노동계의 역할은 이 정부에서 크게 축소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주요 노조가 정부의 노동 정책에 반대를 든 데다, 정부도 노조가 기존 관행을 버리지 않으면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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