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실적이 올해 7월까지 10개월 연속 줄어들며 우리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수출은 8월 들어서도 10일까지 전년 동기 대비 15.3% 감소했다.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은 16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세계 수출 비중이 2017년 정점을 기록한 후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수출 시장을 인도·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등 성장 지역으로 다변화하는 노력을 배가하고 수출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각종 규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완화하는 것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구개발(R&D)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초격차 핵심 기술을 확보해야 대접 받고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출 부진으로 우리 경제에 암운이 감돌고 있다.
△최근 5년간 수출이 늘어나 잘한 걸로 보일 수 있지만 세계 수출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한국은 2017년 정점을 기록한 뒤 계속 위축돼왔다. 2017년 3.23%를 기록하고 해마다 0.12%포인트가량 줄었다. 2022년에는 2.74%까지 하락해 2000년대 초반 수준으로 돌아갔다. 수출이 내리막길로 가는 것은 추세적 현상이다.
-수출이 언제쯤 회복될 것으로 보나.
△단기적으로 보면 좀 회복될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에 악화한 기저 효과가 있는 데다 올해 하반기에 정보기술(IT) 기기, 반도체 부문이 살아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끝난 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자동차 수출은 이연 수요 축소와 고금리에 따른 구매력 감소로 다소 줄어들 것이다. 반도체 재고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 전체 수출은 11~12월쯤 증가세로 전환되고 내년 상반기에 본격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 수출 추세 악화가 큰 문제일 것 같다.
△앞으로 정말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수출 업체 간담회를 해보면 80% 정도는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외국인 인력을 쓰게 해달라고 한다. 또 주52시간 근로제 도입의 영향으로 주당 실제 근로시간은 2017년 42.5시간에서 2022년 37.9시간으로 5년 만에 4.6시간 줄었다. 사람 구하기가 어려운데 구해놓은 사람들의 일하는 시간도 줄었다. 시장의 수요 변동에 따라 생산을 탄력적으로 조정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기업들이 계속 해외로 나가고 외국 기업들은 잘 들어오지 않는다.
-기업의 해외 이탈이 심각한 상황인가.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 설비투자를 보면 2017년 68조 3000억 원에서 2021년 60조 5000억 원으로 거의 8조 원이 줄었다. 한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 대비 한국의 해외직접투자(ODI) 배율이 2018년에는 2.3배였는데 2021년에는 6.2배로 늘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기업의 해외 이탈이 완화되고 있는데.
△정부가 바뀐 후 친(親)기업 정책을 펼치면서 이탈 추세가 잦아들고 있다. FDI 대비 ODI의 배율도 2022년 3.6배로 좀 둔화했다. 어떤 정책을 쓰느냐 하는 선택에 달린 문제다.
-산업 현장에서는 필요한 인력이 부족하지만 청년 실업은 여전히 심각한데.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다. 집집마다 자식이 하나이고 대부분 대학을 나와 공장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 사무직·전문직 일자리는 한정돼 있다. 생산 현장에서는 사람이 부족하다고 난리이다.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수출이 7월까지 14개월 연속 줄었다. 중국 수출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중국이 중간재를 국산화해 자급률이 높아지면서 대중국 수출이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산업화 초기에 중간재를 수입한 뒤 조립해 외국에 팔면서 국산화하는 작업을 했다. 중국의 미국 수출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17.8%나 줄어든 영향도 크다. 코로나19 전후 6~7%에 달했던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최근 5%대 내외로 떨어진 영향도 적지않다. 경기가 회복되면 전반적으로 개선되겠지만 중간재의 대중국 수출은 지속적인 과제로 남을 것이다.
-중국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투자·소비·수출 등 총체적으로 좋지 않다. 외국인을 포함한 투자가 위축되고 오히려 해외로 이탈하고 있다. 그동안의 봉쇄 경제로 소득이 줄었기 때문에 소비도 침체돼 있다. 이 와중에 미중 갈등에 인건비 등 생산요소 가격 상승까지 겹쳐 수출도 줄고 있다. 중국의 수출 증가율은 해마다 5~10% 정도였는데 올해 1~7월에는 -4.8%이다. 이러다 보니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온다. 결국 내수를 다시 진작하고 각종 통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수 진작만으로 옛날처럼 활황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미중 갈등이 완화되겠지만 기본 구도는 상당히 오랫동안 갈 가능성이 높다. 우리 경제가 과거처럼 중국에 의존할 수 있는 상황은 다시 오기 쉽지 않다. 우리는 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아세안과 인도·미국·유럽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수출 다변화를 위해 어느 나라에 집중하는 게 좋은가.
△각국의 장점을 살려 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건비가 비싼 싱가포르·말레이시아는 R&D센터나 지역 본사를 두면 좋을 것이다. 인도는 IT나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고급 인력을 활용하려는 업종이 진출하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앞으로 2030년·2050년이 되면 아세안 국가들이 세계 10대 경제국으로 진출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성장하는 시장에 우리가 올라타야 한다. 중국은 이웃 국가인 데다 시장이 아무리 위축돼도 워낙 크기 때문에 비중을 약간 줄이더라도 그곳에서 경제적 실리를 계속 챙겨야 한다.
-수출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나라 산업 입지의 매력도를 최소한 경쟁국과 동등한 수준으로 올려줘야 한다. 생산인구와 노동시간도 감소하고 노동 유연성도 낮은 환경에서 노동집약적 산업은 계속 사라지거나 해외로 이전할 것이다. 대신 국내에서는 고부가가치 첨단산업 쪽으로 계속 진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적은 인구로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지속 성장할 수 있다. 그러려면 첨단 기업을 유치해야 하는데 산업 입지가 더 좋지는 못할망정 나빠서는 안 된다.
-투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경직된 주52시간제 등 노동 규제를 선진국과 비슷하게 개선해야 한다. 미국은 노사 단체협상을 4년에 한 번씩 하는데 매년 하는 것, 선진국에서 허용되는 파업 시 대체근로 금지, 외국 제조업에서는 대부분 합법인데 불법으로 규정된 파견근로 등을 바꿔야 한다. 비정규직을 쓸 때 독일은 3~4년 후, 우리는 2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이 장기 투자를 저해한다. 환경·안전·진입 규제도 선진국과 비슷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기업 규제도 풀어야 한다. 지정되면 많은 규제들이 생기는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는 한국에만 있다.
-기업에 대한 전방위 지원도 중요할 텐데.
△외국에서는 반도체·2차전지·전기자동차의 경우 시설·R&D 투자할 경우 보조금을 많이 준다. 이런 것들도 동등하게 해줘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은 법인세율도 더 낮춰야 한다. R&D 세액 공제도 대·중소기업을 차별하지 말고 외국과 비슷하게 맞춰야 한다.
-잠재성장률이 계속 떨어져 2% 밑으로 추락할 것으로 우려된다.
△노동과 자본의 두 생산요소 중 자본·기술은 어느 정도 축적돼 있지만 인구가 줄면 성장률이 높아지기 어렵다. 단기적으로 인력 부족에 잘 대응하고 중장기적으로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 기업들은 결혼·출산·양육친화적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출산 문제는 일종의 문화이므로 칼을 들이댈 게 아니라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
-외국 인력 활용 제도를 어떻게 개선하는 것이 좋은가.
△일본·대만·싱가포르 등은 외국 인력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비자 완화 정도가 아니라 기업들이 원하는 만큼 통 크게 풀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내국인 근로자의 10% 범위에서 외국인을 쓴다는 규정 때문에 인력을 채용하지 못하는 업체들이 있다.
-미중 패권 전쟁과 블록화 등으로 수출이 중장기적으로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과 유럽이 중국 견제를 위해 동맹국,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과 함께 별도의 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나쁜 것은 아니다. 새로운 공급망 구축에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와 유럽연합(EU)·미국까지 중국에 대해 실리 기반 외교를 추구하고 있다. 외교 상황은 늘 바뀌기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를 잘 관리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변화무쌍한 국제 경제 질서를 감안해 우리의 실력을 키우는 것이다.
-우리의 실력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가.
△미국이나 EU·중국이 우리에게 의존할 게 있으면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할 것이다. 중국이 30년 동안 우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것은 우리의 기술력 때문이다. R&D 투자를 계속하면서 독점적 기술 우위 요인을 확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래야 세상이 바뀌어도 대접을 받으면서 우리 목소리를 내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초격차 핵심 기술 몇 개만 독점적으로 갖고 있으면 주변 국가들이 계속 우리에게 관계를 유지하자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He is…
1959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중앙고와 서울대 윤리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교에서 행정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파리 제10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산업자원부에 들어간 뒤 산업정책관·산업통상기획관, 지식경제부 무역정책관·대변인·기획조정실장,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산업통상자원비서관,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을 역임했다. 이어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자동차산업연합회장을 거쳐 지난해 9월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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