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은 대혼전이었지만 알고 보니 각본이 따로 있었던 한판이었다. 각본의 제목은 ‘어차피 우승은 한진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6년 차 한진선(26)이 마지막 날 샷 이글만 두 방을 터뜨리는 진기명기 플레이로 하이원리조트 여자오픈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최종일 보기 없이 이글 2개, 버디 3개의 7언더파 65타를 포함해 나흘 합계 14언더파 274타. 2위 그룹의 임진희, 이가영, 이소미, 마다솜을 6타 차로 멀찍이 따돌렸다. 시즌 첫 승이자 데뷔 2승째다.
20일 강원 정선의 하이원CC(파72)에서 끝난 대회 4라운드에서 한진선은 6번 홀부터 11번 홀까지 6개 홀에서 무려 6타를 줄였다. ‘버디-이글-파-파-버디-이글’.
최종일 우승 경쟁의 3분의 1지점까지만 해도 선두부터 3타 사이에 17명이나 몰린 대접전 양상이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독주로 흐른 시작은 7번 홀(파4)이었다. 한진선이 핀까지 161야드를 남기고 친 두 번째 샷이 비를 뚫고 낮은 탄도로 묵직하게 날아갔다. 물을 건너 핀 앞에 떨어진 공은 몇 차례 튄 뒤 홀로 숨어 들어갔다. 마치 퍼터로 굴린 것처럼 정확한 세기로 들어간 샷 이글이었다. 한진선은 ‘설마’하는 표정으로 한동안 어리둥절하다가 캐디의 하이파이브 요청을 받은 뒤에야 실감한 듯했다. 정슬기, 이제영 등과 8언더파 공동 선두였던 그는 단숨에 10언더파의 2타 차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행운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임진희, 마다솜, 이제영에 3타 앞서있던 11번 홀(파5). 이번에는 웨지가 마법을 부렸다. 99야드를 남기고 높은 탄도로 날아간 세 번째 샷이 그대로 들어갔다. 두 번째 샷 이글에 한진선은 ‘뭐야, 이거’라는 표정이었다. 16번 홀(파3)에서 넣은 3.5m 내리막 버디 퍼트는 쐐기를 넘어 축포였다.
한진선은 1년 전 이 대회 우승이 ‘130전 131기’의 데뷔 첫 승이었다. 선두에 3타 뒤진 공동 2위로 출발해 2타 차로 우승했다. 2타 차 공동 3위로 출발한 올해도 역전 우승이다. 하이원리조트 대회 2연패는 2019·2021년 임희정(2020년은 코로나19로 대회 취소)에 이어 두 번째. ‘하이원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골프 선수 중 유일하게 카카오(카카오VX)를 메인 스폰서로 둔 한진선은 2018년 최혜진에 이어 신인상 포인트 2위에 올랐던 선수다. 초등학생 시절 사격 입문 석 달 만에 전국 대회 2위에 올랐던 독특한 이력도 있다. 골프 입문은 남들보다 꽤 늦은 중2 때였다. 올 시즌 톱 10 진입 세 차례에 그치는 등 고전하던 한진선은 이번 우승(상금 1억 4400만 원)으로 상금 랭킹을 29위에서 15위(약 3억 4900만 원)까지 끌어올렸다. 그는 “한 라운드에 (퍼트가 아닌) 샷으로 이글 두 번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연습 라운드도 아니고 공식 경기에서 나오니 신기할 따름”이라며 “고지대 코스라 한창 더울 시기에도 시원하다. 그래서 올 때마다 왠지 기분까지 좋아지는 곳”이라고 했다.
1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해 데뷔 첫 승에 도전했던 이제영은 4타를 잃고 5언더파 공동 12위까지 떨어졌다. 8언더파 공동 2위의 임진희는 박지영과 대상 포인트 공동 선두가 됐다. 박지영은 이번 대회를 쉬었다. 박민지는 3타를 줄여 7언더파 공동 6위로 마쳤고 추천 선수로 출전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멤버 유소연은 1오버파 공동 39위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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