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명의 가짜 독립유공자도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발본색원해서 유공자 서훈을 박탈할 것입니다.”
6월 5일 출범 62년 만에 차관급 국가보훈처에서 장관급 독립 부서로 승격한 국가보훈부가 요즘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른바 ‘가짜 유공자’ 서훈 취소와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추진,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 삭제 등 굵직한 보훈 정책을 연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선두에 국회 재선 의원 출신으로 초대 국가보훈부 수장인 박민식(사진) 장관이 서 있다.
20일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박 장관은 첫마디부터 확실한 보훈 철학을 보여줬다. 그는 “지난 정부에서 진행하다 공정성 시비가 불거지며 중단됐던 친북 논란이 있는 독립유공자의 공적을 다시 검증해 가짜 유공자를 찾아내는 데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대국민 공개 검증 절차에 국민 참여를 보장할 것”이라며 "중복, 허위 공적 등 공적 이상자에 대한 서훈 취소 절차를 조속히 진행해 가짜 독립유공자 논란을 종식시키고 공개 검증 결과 거짓으로 밝혀지면 관련 법에 따라 반드시 서훈을 취소하겠다”고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박 장관은 국가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고귀한 생명과 그 가족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보훈부 장관으로 재직하는 마지막까지 이를 철저하게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매일같이 한다”고 귀띔했다.
박 장관은 최근 논란이 됐던 호우 피해 복구 지원을 나갔다 순직한 해병대 고 채 상병에 대한 예우는 윤석열 정부 일등 보훈의 의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채 상병에게는 순직 다음날 보국훈장 광복장이 곧바로 추서됐다. 보국훈장은 국가 안전 보장에 뚜렷한 공을 세운 인사에게 주는 훈장이다. 또 채 상병의 경우 국가보훈부가 일종의 패스트트랙을 통해 이른 시일 내에 국가유공자로 지정할 방침이다. 그는 “나라를 위해 일하다 다치거나 순직한 분들의 공적 입증 책임 부담을 국가가 직접 져야 한다”며 “이것은 나라에 이바지하는 이들에 대한 예우”라고 강조했다. 유공자 지정까지 수개월이 걸리지만 현 정부에서는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고 채 상병이 이를 적용받는 첫 대상이 된 것이다.
국가보훈부의 올해 정책 목표 1순위는 ‘보훈 문화 확산’이다. 박 장관이 강한 의지를 가지고 밀어붙인 것으로 일등 보훈은 국가의 품격으로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우뚝 서는 상징적 의미가 담겼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국정과제인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 보훈’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분을 존중하고 기억하는 나라’를 완수하기 위한 연장선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를 목표로 하는 타 보훈 업무 대비해 보훈 문화 확산은 미래 세대와 연계돼 바람직한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고 향후 대한민국의 정신적인 역량을 발전시키는 ‘무형의 사회간접자본’으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 장관의 이 같은 확신은 1월 이스라엘 방문 때 이스라엘의 국가 정체성 교육 프로그램인 ‘쉘라흐’를 체험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스라엘은 전 국민이 정규 교육 과정이자 필수과목으로 수강하면서 자연스럽게 선조들의 역사와 안보 의식 및 국가 정체성을 함양하고 있다”며 “우리도 미래 세대에게 독립·호국·민주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고 그 과정에서 전 국민이 희생·헌신했던 국가유공자의 숭고한 헌신을 깨달아야 이 땅에 성숙한 보훈 문화가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박 장관은 재임 기간 중 국가보훈부가 독립유공자 서훈에 대한 재평가를 강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전임 정부들이 망가뜨린 보훈의 가치를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것이다. 박 장관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어느 일면만을 보는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그 인물의 삶을 종합적으로 돌아보는 거시적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이런 평가 과정에서 해당 인물을 예우하거나 비판할 때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엄정한 근거와 공정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박 장관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첫손에 꼽았다. 박 장관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진영 논리에 빠져 폄훼돼 있다”며 “그가 나라를 세운 초대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역사적인 정체성, 대한민국 정체성이라는 측면에서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은 반드시 조속하게 건립돼야 한다는 게 박 장관의 생각이다. ‘친일파가 아니라는 데 장관직을 걸겠다’고 공언한 박 장관이 백선엽 장군 동상 건립과 국립묘지 홈페이지에서 친일 문구 삭제를 밀어붙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뿐 아니라 한국군에 대한 미군의 부정적 태도를 바꿔 대한민국 국군을 공산군의 남하를 저지하는 진정한 동맹군으로 여기게 끔 했다”며 “전후에도 육군참모총장 등을 역임하며 국군을 재건했다”고 평가했다.
반면에 박 장관은 독립운동가 여운형 선생과 홍범도 장군에 대한 서훈과 관련해 전 정권이 과오를 행했다고 거론했다. 진보 정부에서 서훈을 다시 받은 여운형 선생(2008년 노무현 정부)과 홍범도 장군(2021년 문재인 정부)의 경우 “동일 공적으로 이중 서훈을 줄 수 없는데 파격적으로 독립과 무관한 사유를 들어 서훈을 줬다”며 “특히 여운형 선생의 경우 보훈심사위원회 기록도 찾기 힘들 정도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고 일갈했다. 사회적 논란을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서훈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박 장관은 어찌됐든 보훈 논란과 상관없이 국민 누구나 존경하는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에서 유의미한 진전을 끌어내겠다며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안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형사재판을 받은 기록이 일본에 남아 있을 테니 일본의 협조를 구하겠다는 의미다. 그는 “(정부가) 여태까지 한 번도 일본에 무게감 있게 요청한 적이 없다고 들었다”며 “지금 한일관계가 새로운 퀀텀점프를 하는 시대이니 만큼 적극적으로 협조 요청을 하고 주한 일본대사와도 이 문제로 만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조기 전역하는 군인연금 비대상 중장기 복무(5년~19년 6개월) 제대군인에 대한 전직지원금 확대 추진도 핵심 과제라고 박 장관은 소개했다. 일반인의 경우 고용노동부 구직급여 상한액(현재 198만 원)의 50% 범위에서 최장 6개월간 지급한다. 하지만 조기 전역하는 중장기 복무 제대군인은 현재 구직급여의 25.3~35.2% 수준에 그치는 실정이다. 박 장관은 “법적으로 지급하게 돼 있는 50%까지 지급 금액을 인상하고 지급 기간도 최대 8개월로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 중·장기 복무가 아닌 의무 복무자에 대한 지원도 강화할 방침이다. 그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한 의무 복무 제대군인에게 군 복무가 경력 단절이 아닌 경력으로 인정받고 사회 진출에 디딤돌이 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강화되면 ‘일등 보훈’의 중요성에 대해 국민의 인식이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최근 의무 복무 제대군인 정의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 등을 포함한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돼 내년 1월 12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주요 지원책으로는 진로·직업 상담과 취업 알선, 창업 상담 및 교육 등 취·창업 지원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끝으로 정치인 출신 박 장관에게 내년 4월 치러질 정치 이벤트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그는 “정치는 본인 의지도 중요하지만 고객인 유권자의 니즈(needs)가 훨씬 중요하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며 “몇 번을 부산시장에 나간다고 도전해봤는데 당시는 부산시민이 나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다만 박 장관은 “고객의 니즈가 있으면 그때 생각할 일이지 내 의지는 의미가 없다”며 “지금은 국가보훈부 업무에 푹 빠져 있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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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부산 △서울대 외교학 학사 △1998년 제22회 외무고시 합격 △1990년 외무부 국제경제국 사무관 △1993년 제35회 사법시험 합격 △1996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2008~2012년 제18대 국회의원 (부산 북구강서구갑·한나라당) △2012~2016년 제19대 국회의원 (부산 북구강서구갑·새누리당) △2022년 제32대 국가보훈처 처장 △2023년 제1대 국가보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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