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코로나19 대유행이 막을 내리는 분위깁니다. 지난달 31일부터 코로나19 감염병 등급이 기존 2급에서 인플루엔자(독감)와 같은 4급으로 하향되며 일상회복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죠. 그런데 팬데믹 기간 활약했던 코로나19 치료제 ‘라게브리오’가 때아닌 효능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미국 머크(MSD)가 개발한 라게브리오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복제 과정에서 리보핵산(RNA) 대신 삽입되어 바이러스 사멸을 유도합니다. RNA를 닮은 리보뉴클레오사이드 유사체를 끼워넣어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원리인데요. 지난해 3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이들 중 입원, 사망을 포함한 중증 진행 위험이 높은 18세 이상 성인 환자를 대상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긴급사용 승인을 받으면서 처방이 시작됐습니다. 방역 당국이 두 번째로 도입한 ‘먹는 코로나19 치료제’라 도입 초기부터 논란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MSD가 FDA 긴급사용승인 근거로 제출한 임상 중간 결과에 따르면 라게브리오의 중증 입원 및 사망 예방 효과는 30% 수준으로 보고됐습니다. 화이자가 전 세계 최초로 선보인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의 89%와 비교하면 현저하게 낮은 수치라 사사건건 비교되기 일쑤였죠. 많은 국가들이 먼저 등장한 팍스로비드를 우선 사용했던 건 이런 이유입니다. 하지만 팍스로비드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함께 먹으면 안되는 약이 무려 23가지나 돼 처방이 제한적이었거든요. 팍스로비드 사용이 불가피한 이들을 위한 대체제로서 라게브리오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라게브리오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올해 2월 유럽의약품청(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가 라게브리오의 허가신청을 반려하라고 권고했고 그로부터 4개월 뒤 MSD가 EU 허가 신청을 철회하면서 또다시 효능 논란이 불거졌거든요. MSD는 CHMP에 라게브리오의 재심사를 요청하고 실제 임상현장에서 라게브리오를 처방 받았던 환자들의 데이터를 추가로 제출했는데요. CHMP가 ‘재심사 절차 규정상 최초 승인 신청서에 있는 데이터 외에 새로운 데이터는 검토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어차피 평가 결과가 바뀌지 않을 것이란 판단 아래 허가 신청 자체를 철회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유럽에서 한바탕 논란이 벌어진 뒤 보건당국이 라게브리오를 추가로 들여온다고 하니 국내에서도 크고 작은 반발이 제기되는 형국입니다. 이달 초 질병관리청이 코로나19 확진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이유로 라게브리오를 포함한 코로나19 치료제를 추가 수입하겠다고 밝혔거든요. ‘정부가 퇴출될지도 모르는 약을 산다’는 식의 원색적 비난까지 등장하자 질병청은 ‘라게브리오는 중증화·사망 예방효과가 있고 유럽 등 다수 국가에서도 긴급사용 승인을 유지하며 사용 중’이라는 반박 자료를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자료에는 70세 이상에서 코로나19 중증 예방효과가 39%, 80세 이상에서 45%에 달했다는 국내 효능 데이터도 담겼죠.
감염병 전문가들도 간이나 신장기능이 떨어져 팍스로비드를 복용하기 어려운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이라며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는 증상 발현 5일 이내에 복용해야 효과가 있는데 기존 약물의 휴지기나 조정기 없이 곧장 투약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히죠. 흔히 콧줄이라 불리는 L-튜브로 투여 가능한 코로나19 치료제는 라게브리오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영국·일본·호주 등 30여 개 국가에서 여전히 라게브리오의 승인을 유지 중인 건 이런 특성 덕분으로 평가됩니다. 올해 7월 기준 무려 500만 명이 라게브리오를 처방 받았다고 하는데요. 실제 MSD는 라게브리오로 72억 달러(약 9.4조 원)의 매출을 올리며 코로나19 특수를 제대로 누렸습니다. 질병청은 코로나19가 4급 감염병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고위험군을 보호하기 위해 라게브리오 등 코로나19 치료제 무상 지원체계를 유지한다고 밝혔죠. 카카오맵을 이용하면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처방 및 조제가 가능한 병의원과 약국의 위치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해요. 그에 반해 한때 주식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국산 코로나19 치료제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입니다. 일동제약(249420)·현대바이오(048410) 등이 개발에 참여한 코로나19 치료제의 긴급사용승인을 신청했다고 밝혔지만 몇 달째 허가는 커녕 진행 경과를 알 수 없는 실정이죠. 라게브리오의 추가 수입 결정이 뭇매를 맞는 건 어쩌면 국산 코로나19 치료제의 허가가 늦어지는 데 대한 불만과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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