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7일 서울 광화문광장. 여름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날씨 속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갑자기 4개 동의 천막이 들어섰다.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근혜 정부의 지방재정교부금 정책에 반발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간 것. 자치단체장의 갑작스러운 단식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당시 이 시장은 “중앙정부를 향한 약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치고 단식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는 일이다. 당시 성남시는 지방자치박람회를 한다는 구실 아래 단식용 불법 천막을 설치했다.
이후 11일간 그곳은 이 시장의 ‘단식 집무실’이 됐다. 이제는 고인이 된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를 묵인했다. 공교롭게 당시 이 시장이 단식에 들어간 같은 날, 바로 몇 미터 앞 광장에서 또 한 사람의 단식이 시작됐다. 하지만 천막은 물론 작은 파라솔조차 칠 수 없다는 광화문광장 조례 탓에 당사자는 우산 하나만 받쳐 들고 폭염 속에서 며칠 동안 ‘양심수 석방’을 외쳤다. 법을 지킬 수밖에 없는 ‘약자’와 이를 무시할 수 있는 ‘강자’ 사이의 이상한 단식 동거가 한 장소에서 진행된 것이다.
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성남시장은 경기지사, 대통령 후보를 거쳐 국내 제1야당 대표가 됐다. 그런 사람이 또다시 ‘단식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장소는 광화문광장에서 국회 앞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7년 전 단식에서 외쳤던 ‘약자의 몸부림’이라는 근거는 변하지 않았다. 소속 국회의원이 무려 170명에 달하는 거대 야당의 수장이 갑자기 ‘약자’가 됐다. 진정한 약자는 누구일까. 대통령 빼고는 모두 약자인가.
사람이 곡기(穀氣)를 끊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다. 그만큼 절실하고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선 마지막 저항이고 몸부림이다.
하지만 이 대표의 단식에서는 진정성과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단식을 내건 명분을 보더라도 ‘윤석열 정권의 퇴행과 폭주’ ‘민생 포기’ ‘오염수’ 등 다분히 추상적이고 자의적이다. 더구나 검찰 소환 조사를 불과 며칠 앞두고 진행됐다는 점에서 검찰과 힘겨루기식 ‘꼼수 단식’이라는 비판을 면하기도 힘들다.
그동안 진행된 무수히 많은 단식의 경우 요구 사항이 구체적이어서 단식을 거두게 할 수 있는 상대방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식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사실상 대통령밖에 없는 듯하다. 앞으로 단식이 얼마나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 이 대표에게 ‘건강 챙기시라’고 손을 내밀기 전까지는 국내 제1야당 대표의 ‘식사 보이콧’은 계속될 것인가.
지난주 여론조사 기관 갤럽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이 27%로 고꾸라지며 하향세를 지속하고 있다. 가뜩이나 지지율이 바닥을 기는 대통령(33%)과 여당(34%)보다 못한, 그야말로 지하까지 뚫고 내려갈 모양새다.
국민들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에 60%(180석)에 달하는 표를 몰아줬고 대선(이재명 후보)에서도 47.8%의 지지율을 보냈다. 하지만 그 많던 표는 다 어디로 갔나. 민주당이 그동안 지지율의 절반 이상을 까먹은 중심에는 이 대표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오죽하면 여당 내부에서 “이 대표가 없으면 내년 총선에서 이기기 힘들 것”이라는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얘기까지 나올까.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최근 민주당에서 벌어진 돈 봉투 사건을 비롯해 방탄 국회, 김남국 의원 징계 건 등만 보더라도 ‘민주당에 과연 미래를 맡기는 게 맞나’라고 갸우뚱하는 국민들이 많다.
‘민주’에 눈감은 민주당의 폭주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그러니 반성까지 기대하는 것은 이제 사치가 된 듯하다.
2002년 현재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불법 대선 자금 사건으로 ‘차떼기당’이라는 치욕을 겪었다. 그리고 오명을 벗기 위해 선택한 것은 단식이 아닌 진짜 ‘천막 당사’였다. 한나라당을 이끈 박근혜 대표는 분위기 전환에 성공해 결국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적에게서, 과거에서 배우라. 민주당에 지금 필요한 것은 진정성 없는 단식용 천막이 아닌 ‘개혁 천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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