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과정에서 경제적으로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이를 매개로 한 위안화의 국제화, 정치적으로는 브릭스(BRICS)를 빼놓고 말하기 어렵다. AIIB는 애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기구이며 기구 내 발언권도 크다. 브릭스의 경우 브라질·러시아·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과 뭉쳐 국제사회의 미국 중심 흐름에 대항하는 구도를 만드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브릭스 회원국들이 설립한 신개발은행(NDB)이 상하이에 본부가 있다.
하지만 이 구도가 삐걱거리는 모습이 감지된다. AIIB에서는 임원의 사임 과정에서 불거진 잡음 속에 국제사회 안팎에서 중국의 지나친 영향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브릭스에서는 브라질·인도 등 다른 회원국과 주도권 다툼의 여지가 나타나고 있다.
◇AIIB 통한 위안화 국제화 ‘삐걱’=“AIIB는 중국의 지정학적 목표를 위한 자원입니다. 중국 공산당이 모든 면에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올 6월 물러난 밥 피커드 전 AIIB 커뮤니케이션 이사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캐나다 출신으로 지난해 3월 AIIB에 합류했던 그는 근무하는 동안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 계획의 대상이 되는 국가에 자금을 지원하도록 지시받았다는 폭로를 내놓았다. 그러면서 “중국 공산당 당원 중 누구도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도 받았다며 모국인 캐나다를 향해 “중국을 강하게 만드는 조직에 참여하는 이유가 뭐냐”고 반문했다. AIIB와 중국 외교부는 이 주장을 강하게 부인했지만 캐나다는 AIIB 관련 활동을 중단했다.
AIIB는 애초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만들어진 국제결제은행(IMF)·세계은행(WB)에 대한 안티테제 성격이 강했던 만큼 2016년 출범 당시부터 위안화의 국제화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많았다. 위안화의 위상은 답보 상태다. 7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월례 통계를 보면 전체 글로벌 결제 비중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3.06%로 전체 통화 가운데 5위다. 2~3%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글로벌 액화천연가스(LNG) 시장에서 위안화 결제 사례가 등장했고 아르헨티나가 외채 상환에 위안화를 썼지만 이를 위안화 국제화의 성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1위인 달러화와 2위인 유로화의 비중이 각각 46.4%, 24.42%로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브릭스 NDB는 ‘생존 위기’=브릭스에서도 중국은 신흥국의 인프라 확충을 위한 금융 지원을 목적으로 2015년 설립된 NDB를 통해 경제 부문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왔다. NDB가 신흥국에 지원한 자금 총액은 2017년 10억 달러(약 1조 2800억 원)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초에는 300억 달러(약 38조 4000억 원)까지 급증했다.
하지만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NDB가 만기 도래하는 기존 부채에 대한 차환 목적의 채권 발행조차 여의치 않을 정도로 생존의 위기에 내몰렸다고 전했다. 러시아 정부가 자본금의 20%를 출자한 게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문제가 됐다. 러시아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금융망에서 퇴출된 상황에서 이와 직접 관련된 NDB에 자금을 빌려주면 직간접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NDB가 올 4월 12억 5000만 달러 상당의 채권을 발행하며 부담한 금융 비용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 비해 5배나 높다. 6월 기준 NDB 채권의 발행금리가 5.14%인 반면 아시아투자은행(ADB)·세계은행(WB)의 채권금리는 각각 3.81%, 3.54%로 훨씬 낮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마찰이 다소간 불거지는 모양새다. 브릭스는 지난달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이란·아르헨티나 등 6개국을 내년 1월부로 회원국에 추가하기로 했다. 브릭스 외연 확대를 주장했던 중국과 러시아가 정치적으로 승리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회원국 추가에 미온적이던 브라질과는 회담 첫날부터 이견이 불거졌고 인도는 조건부 찬성을 내건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정상회의 공동선언 발표도 예정보다 하루 미뤄졌다. 같은 브릭스 회원국인 인도와는 카슈미르를 두고 2017년부터 군사적 영토 분쟁을 빚고 있다. 게다가 인도가 최근 미국과 중국 간 지정학적 분쟁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이른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을 노골화함에 따라 경제적 이해관계도 부딪히는 실정이다. 시 주석이 이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불참하는 것을 두고도 이와 연관 짓는 시선이 많다. 브라질과는 ‘공동통화’를 두고 생각이 다르다. 중국은 위안화의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반면 브라질은 새로운 공동통화의 창설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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