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이 장기화 하는 가운데 기업투자와 민간소비가 위축되며 내수 악화가 일본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 완화와 관광 수요 확대로 수출이 늘어났지만 엔화 약세로 인한 수입 감소 폭이 더 큰 ‘불황형 흑자’의 상황이다. 당분간 엔화 약세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제기된다.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내각부는 올해 2분기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보다 1.2% 증가하는 데 그쳤다고 2차 속보치(개정치)를 발표했다. 내각부는 이 추세가 1년간 이어질 경우 연간 실질 GDP 성장률은 4.8%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15일 발표한 1차 속보치(전 분기 대비 1.5% 증가, 연 6.0%증가)에 비해 연 성장률이 1.2%포인트(p) 낮아진 수치다. 시장 전망치(전 분기 대비 1.3% 증가, 연 5.5% 증가)보다도 밑돌았다.
성장률 둔화는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쪼그라든 민간 소비에 자본 지출 감소가 겹치며 나타난 결과로 분석된다. 2분기 개인 소비는 마이너스(-)0.6%로 전 분기 대비 1.1% 감소했다.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임금을 나타내는 평균 현금 수입은 전월대비 1.3% 증가했는데 이는 근원 소비자 물가 상승률인 3.1%보다 낮다. 이에 따라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조정된 실질 임금은 16개월 연속 하락하며 7월 실질 임금은 전월대비 2.5% 감소했다. 실질 임금 감소가 민간 소비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기업의 투자 설비를 나타내는 자본 지출은 -1.0%로 전 분기 대비 2.4%나 줄어들었다.
내각부는 다만 지난해 4분기 이후 일본 경제가 3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GDP 증가의 상당 분이 불황형 흑자(달러 대비 엔화 약세로 인한 수출 증가와 수입 감소)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2분기 수출은 3.1% 증가했으나 수입은 4.4% 감소해 마이너스 폭을 넓혔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마르셀 티엘리안트는 “GDP보고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역 흑자의 상당 부분이 수입의 현저한 감소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요시키 신케 다이이치 생명 경제연구소 이코노미스트도 “자동차 이외의 상품 수출이 여전히 부진”해 경기의 개선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3분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제기된다. 나가하마 리히로 다이이치 생명 경제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제성장률에 연동성이 높은 광공업 생산은 7월 이후 더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며 “개인소비의 기초통계가 되는 가계의 실질소비지출도 줄어드는 추세여서 3분기는 마이너스 성장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와중에 엔화 약세는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장중 한때 1달러당 147.87엔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11월 이후 10개월만의 최고 수준이자 올해 들어 최고치다.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은 각의(국무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외환시장 동향을 높은 긴장감을 갖고 주시하고 있다”며 “과도한 변동에 대해서는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고 적절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구두 개입에 나섰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