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흔히 겪는 하복부 통증은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다. 하복부에는 여성의 중요한 생식기관인 자궁 외에도 대장·방광과 같이 여러 장기들이 자리한다. 가장 먼저 자궁내막증, 자궁근종, 골반염 등의 부인과적 질환이 원인일 가능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질환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불임을 유발할 수도 있으므로 하복부 통증이 지속된다면 서둘러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부인과적 질환 외에도 하복부 통증을 유발할 수 있는 원인 질환을 조기에 진단하려면 전문의와 상의를 통해 검사를 받아야 한다.
여성의 하복부 통증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부인과적 질환은 자궁내막증이다. 자궁이 아닌 다른 부위에 자궁내막 조직(자궁내막종)이 생겨나 증식하는 질환으로 흔히 심한 월경통과 골반통을 동반한다. 통증은 유착 위치와 유착 정도에 따라 다양하다. 자궁내막증 유병률은 최근 들어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심한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습관 같은 현대인의 특성과 더불어 초경 시기가 빨라지고 결혼 및 출산 시기가 늦어진 점이 유병률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증상이 가볍고 종괴 크기가 작은 경우 자궁 내 장치를 삽입하거나 호르몬요법, 진통제 등을 활용하며 경과를 지켜볼 수 있다. 그러나 증상이 심하고 종괴 크기가 커지면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환자 사례를 들어보자. 청소년기부터 심한 월경통을 앓았던 A씨는 20대 후반경 자궁경부암 검사를 위해 산부인과에 처음 내원했다가 골반 초음파로 양쪽 난소에서 약 5cm 크기의 난소 낭종을 확인했다. 이후 월경통이 점점 극심해져 난소 낭종 제거술을 받았다. 수술 후 조직검사를 통해 통증의 원인이 자궁내막종임을 확인했고 자궁과 나팔관에서 심한 유착이 관찰됐다. 수술 시 자궁 및 난소에서 유착이 관찰되는 것은 자궁내막증의 또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자궁내막종을 수술적으로 제거하면 난소 기능이 떨어져 가임력이 저하될 수 있다. 실제 A씨는 수술 후 검사 결과 난소 기능(AMH) 수치가 1.1로 크게 떨어져 가임력 보존을 위한 난자 동결 시술을 시행 중이다. 자궁내막증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증상이 있을 때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하복부 통증의 또 다른 원인은 자궁근종이다. 자궁근종은 자궁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평활근에 양성 종양이 생긴 경우를 말하는데 발병 위치에 따라 장막하, 점막하, 근층내 근종으로 구분한다. 증상은 발병 위치와 크기에 따라 다르다. 특히 점막하 근종은 배아의 착상을 어렵게 해 불임을 유발할 수 있다.
3년째 아이가 생기지 않아 불임 상담을 위해 내원한 B씨 사례를 살펴보자. B씨는 10여년 전 골반초음파에서 자궁근종을 발견했지만 심각하지 않다는 소견을 들었다. 이후 월경량이 많고 아랫배가 부푸는 느낌을 받았으나 산부인과를 찾지 못했다. 최근에서야 산부인과를 방문한 B씨는 자궁강 안에 3cm 크기의 점막하 근종이 있음을 발견했고 결국 자궁근종 절제술을 받았다. B씨처럼 자궁근종을 수술적으로 제거한 경우 자연분만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산부인과 의사와 상의해 분만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B씨는 인공수정을 시도한 끝에 임신에 성공했고 첫째를 제왕절개로 출산할 수 있었다. 참고로 임신 중에는 사용 가능한 약제가 제한적인 데다 수술도 선택적으로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자궁근종이 있다면 임신 전에 치료하는 것이 좋다.
덥고 습한 여름철에 잘 생기는 세균성 질염도 하복부의 불편함을 유발할 수 있다. 세균성 질염은 질 내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유산균이 없어지고 세균이 증식해 발생한다. 치료하지 않은 채 방치하면 자궁 내 경관에 번식한 세균이 자궁내막, 나팔관 및 골반강까지 퍼지면서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를 골반염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임신, 분만, 월경 후에 자주 발생한다. 자궁 내에 피임 장치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발생 가능하다. 골반염이 있으면 종종 아랫배 통증과 발열 증상이 나타난다. 방치하면 복막염, 복강 내 유착, 불임과 같은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으며 난관이나 복강에 흉터가 생기는 경우 불임이나 자궁 외 임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골반염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세균성 질염이 자주 발생한다면 정기적인 검사를 받아 감염의 원인을 치료해야 한다. 질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스, 과로를 피하고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함께 청결제를 적절히 사용하는 게 좋다. 통기성 좋은 옷을 입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결핵에 의한 골반염도 난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단 증상이 없는 경우도 많으므로 가임기 여성은 정기적으로 산부인과 검진을 받길 권한다.
/안경진 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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