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신용 무기 삽니다” 쇄도하지만…내 호신용품, 남의 눈에는 살상무기
부산 돌려차기남 강간 살인 미수 사건,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신림동 성폭행 살인 사건….
최근 잇단 흉악범죄가 발생하고 이를 모방한듯한 흉기 난동 예고글도 줄줄이 올라오며 호신용품 수요가 급증했다. 이커머스 업체에서는 호신용 스프레이부터 삼단봉·전기충격기·너클·쿠보탄·가스총 등 다양한 호신용품 판매액이 훌쩍 뛰었다. 인터파크쇼핑에 따르면 신림역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인 7월 22일부터 8월 초까지 12일간 호신용품 거래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3% 증가했다. 전월 동기 대비 증가율은 399%에 달했다. G마켓 역시 7월 22일부터 지난달 3일까지 호신용품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43% 급증했다고 밝혔다.
주의할 점은 ‘방어용’ 무기가 타인의 눈에는 위협적인 '공격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호신용품은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총포화약법)’상 무기로 규정된다. 실제 사격 기능이 없는 장난감 ‘모형 총’이나 영화·연극용 예술소품 목적의 무기, 길이 15cm 이하의 칼, 전류가 10㎃ 이상인 전기충격기 등도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이 같은 무기류를 소지하려면 관할 시도경찰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워낙 온라인 상 구매 문턱이 낮다보니 규제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신림동 성폭행 살인 사건의 범인인 최원종도 호신용품인 '너클'을 손쉽게 구매해 범행도구로 악용했다. 이에 호신용품에 대한 법적 규제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된다. 최근 경찰은 특별치안활동 검문검색에서 너클 휴대도 적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타인에게 위협감을 주지 않고 법에 저촉되지 않으려면 후추 스프레이 수준이 안전하다는 것이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들의 평가다.
호신용품,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관건
본인의 호진용품에 소지 허가를 받았거나 소지 자체가 합법적으로 판단됐더라도 가해자가 될 위험은 여전히 남아있다.
법원은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사람이 어떤 수단을 사용했는지를 떠나 ‘과잉방위’는 아닌지, 보복심리가 있었던 건 아닌지에 방점을 찍기 때문이다. 국내 형법 상 정당방위가 인정되려면 3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지금 부당한 침해가 발생했을 것(현재성) ▲침해의 정도가 상당할 것(상당성) ▲자신 또는 타인의 법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행위일 것 (형법 21조)
이 같은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 까다롭다 보니 자칫하면 과잉방어에 해당할 수 있다. 과거에도 공격하는 상대방에게 맞서 호신용품으로 급소 등을 가격했다가 특수폭행·쌍방폭행 등의 판결을 받은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특히 ‘상당성’은 상황의 위급함이나 가해자의 흉기 소지 여부, 성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므로 매 사례마다 다르게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현재성 역시 판단 기준이 더 객관적일 뿐이지 대부분의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다. 자신에게 흉기를 실제로 들고 달려들기 전 ‘흉기를 들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는 현재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총기 살인’이 정당방위인 이유는 뭘까
#6월 미국 시카고 남부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시카고 남부 주민 칼리샤 후드(35)와 그의 아들(14)은 30대 남성을 총격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가 정당방위를 인정받고 풀려났다. 오히려 이들 모자는 이후 경찰을 상대로 “사실상 사건의 피해자인 우리를 체포해서는 안 됐다"며 자신들을 잘못 대우했다며 제소했다. 사건 당시 후드는 피해자 제러미 브라운(32)과 언쟁이 붙어 그가 연거푸 폭력을 행사하자 가게 밖에 있던 아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도움을 청하며 총기 사용을 요구했다. 아들은 엄마의 요구대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총을 쏘기 시작했고 브라운이 몸을 피해 달아나자 엄마와 함께 뒤따라가며 총격을 계속했다. 결국 브라운은 현장에서 숨졌다. 한국 법에 따르면 ‘현재성’은 인정되지만 상당성이 지나쳐 과잉방어로 판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미국에서 정당방위의 개념과 범위가 한국보다 매우 직관적이고 방어자 중심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미국 수정헌법 제2조에 기반해 모든 개인에게 총기 등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만큼 타인의 위협에 맞선 무기 사용도 정당방위법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Stand Your Ground Law)’에 따라 보장된다. 해당 법에 따르면 내가 죽거나 다칠 가능성이 합리적으로 의심되는 경우 선제적으로 공격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2005년 플로리다 주에서 법적으로 처음 도입돼 현재는 최소 28개 주에서 운용되고 있다.
과잉 대응의 판단 기준도 상이하다. 한국에서는 상대방이 맨손 폭행을 했을 때 도망치지 않고 삼단봉으로 맞서 때리면 법원에서 상당성이 지나치다고 볼 확률이 크다. 반면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주가 더는 ‘회피의무(Duty to retreat)’를 적용하지 않는다. 정당방위 상황에 놓인 행위자가 치명적 물리력을 행사하기 전 스스로 회피함으로써 위해를 회피할 가능성이 있었는지 여부에 큰 무게를 싣지 않는 것이다.
현실적인 법적 판단 기준 정립 필요하지만…당장은 ‘도망’이 최선?
당장의 반격행위가 나중에 방위 의사와 공격 의사 가운데 어떤 것으로 인정될 지 불투명하다보니 법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솔직히 일단 상황 자체를 피하는 게 개인이나 법적인 차원에서 가장 최선”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최근 국내에서 정당방위와 관련한 논란이 불거지며 경찰 등이 폭력사범을 제압하는 과정에서라도 물리력 사용을 기피하지 않도록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달 7일 검찰에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경찰 등의 물리력 행사에 정당행위·정당방위를 적극 검토해 적용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한 장관은 "최근 발생한 일련의 '묻지 마 식 강력범죄'로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는 등 국민의 불안이 가중된 상황"이라며 "그런데도 범인 제압 과정에서 유형력을 행사했다가 폭력 범죄로 처벌된 일부 사례 때문에 경찰 등 법 집행 공직자들이 물리력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령과 판례에 따르면 흉악범 제압 과정에서의 정당한 물리력 행사는 '위법성 조각 사유(범죄 요건을 갖췄지만 실제로는 위법을 인정하거나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 특별한 사유)'에 충분히 해당한다"며 "검찰은 물리력을 행사한 경찰 및 일반시민에게 위법성 조각 사유와 양형 사유를 더욱 적극적으로 검토해 적용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앞서 윤희근 경찰청장도 일선 경찰이 연이은 흉기 난동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총기나 테이저건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범행 제압을 위해 총기 등을 사용한 경우 면책 규정을 적극 적용할 것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