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피카소’로 불리는 콜롬비아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사진)가 15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1세.
현지 매체인 엘 티엠포 등에 따르면 보테로는 폐렴 등 지병을 앓다가 모나코에 있는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보테로의 딸이 아버지의 부음을 알렸다.
보테로는 1932년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삼촌의 권유로 투우사 양성 학교에 다녔다. 보테로의 초기 작품에는 투우 장면이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10대 후반인 1948년 첫 발표회를 열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50년대 미국과 유럽 등에서 독특한 화풍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바람을 넣어 부풀린 듯 양감을 강조한 작품 속 인물들과 화려한 색채다. 특히 르네상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장의 작품을 ‘보테로식’으로 패러디한 작품들은 익살스러우면서도 묘한 애수가 발견돼 인기를 끌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재해석한 그림 ‘모나리자, 열두 살’(1959)과 벨라스케스의 ‘왕녀 마르가리타’를 재구성한 ‘벨라스케스를 따라서’(2005), 반 에이크의 유명한 작품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을 보테로식으로 표현한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를 따라서’(2006) 등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1970년대부터는 조각 활동에도 힘을 기울였다. 바람둥이 제우스가 유로파를 범하는 그리스 신화 이야기를 담은 브론즈 작품 ‘유로파의 강탈’(1992) 등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보테로는 2009년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페르난도 보테로 전’에 참석차 방한한 적 있다. 방한 당시 그는 ‘뚱보작가’라는 별명에 대해 “13세기 이탈리아에서부터 양감(볼륨)을 중요시하기 시작했는데, 이탈리아에 갔다가 양감이 나타나는 작품들을 보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단순히 뚱뚱한 것을 그리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콜롬비아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3000여점의 작품을 남긴 보테로에 대해 민족 예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예술가로 추모하고 있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우리의 전통과 결점을 아우른, 미덕의 화가 보테로가 세상을 떠났다”며 고인을 추모했고, 고향인 메데인시는 7일간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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