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을 막론하고 옳고 그름을 넘어 국민 모두가 너무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정치인들이 서로 잘잘못을 탓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피해를 본 국민들에게는 무한히 죄송해하고 참회해야 하는 때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22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불기 2569년 부처님오신날(5월 5일)을 앞두고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진우 스님은 최근 정치인들이 대선을 앞두고 잇따라 조계사 내 총무원을 방문하는 것에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질책 아닌 질책을 하고 있다”며 “과거 나라가 어지러우면 왕이 ‘부덕의 소치’라며 자책했듯 국민들을 괴롭게 한 원죄는 당신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치기를 충고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비상계엄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파면까지 이어지고 있는 혼란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헌법재판소에서 재판하는 결론을 존중해야 하고 무조건 따라야 한다”며 “헌법을 따르지 않으면 국가가 형성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진우 스님은 국민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종단 역시 노력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조계종은 우리 국민들이 대형 산불을 비롯한 각종 재난에 더해 국가·정치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올해 처음으로 4월과 5월을 ‘불교의 달, 마음 평안의 달’로 정해 국제불교박람회와 국제선명상축제, 선명상 템플스테이, 불교중앙박물관 기획 전시 등의 행사를 연이어 개최하고 있다. 참여도도 유례없이 높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례로 이달 초 코엑스에서 개최한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는 지난해의 두 배 수준인 연인원 약 20만 명이 찾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참여 인원 중 73%가 20~30대로 청년층의 비중이 높았고 무종교인의 참여도 전체의 47.5%를 차지해 눈길을 끌었다. 진우 스님은 “불교는 마음의 종교이기에 각자 마음을 스스로 달래고 다스릴 수 있는 방법들을 보여주고자 했다”며 “탑돌이 같은 화려하고 축제 분위기가 강한 퍼포먼스보다는 간결하고 평안한 분위기를 통해 속상한 마음을 달래도록 한 기획들이 중심이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불자들 사이에서는 ‘국난 극복과 마음 치유를 위한 담선대법회’가 인기를 끌었다. 진우 스님은 “우리나라 최고의 선승 일곱 분을 모셔 한국 불교 전통 수행법인 간화선의 정수를 나눈 시간이었다”며 “대규모 법석은 오랜만이라 참여 신도가 1만여 명에 달할 정도로 관심이 높아 올가을쯤 한 차례 더 진행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진우 스님은 불교의 달을 마무리 짓는 하이라이트 격인 이번 주말 연등회에 대해서도 “화합과 치유의 장이 될 것”이라며 주목해주길 바랐다. 26~27일 이틀간 서울 동대문에서 인사동까지 10만 개의 연등이 불을 밝힌다. 또 올해 부처님오신날과 어린이날이 겹치는 만큼 진우 스님과 어린이 불자들이 선두에 선다. 다음 달 5일 조계사에서 열리는 봉축법요식에는 사회적 약자와 산불 피해 주민, 제주항공 참사 유족, 전세사기 피해 등 힘든 상황에 놓인 이들을 초청할 예정이다. 진우 스님은 “연등회는 원래 어려움과 고통을 씻어주는 광명의 빛, 복덕의 빛에서 시작됐다”며 “연등회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어 외국인 관람객들이 연등회에 맞춰 한국에 관광을 올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올해도 세계적인 축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진우 스님은 21일(현지 시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서도 깊이 애도했다. 진우 스님은 “세계적인 교단의 수장이 어려운 사람을 위하는 애틋함을 계속 가져갔다는 것은 불교식으로 말해 진정한 ‘자비보살’이나 다름없다”며 “같은 종교 지도자이자 수행자로서 정말 마음 깊이 애도를 표하며 왕생극락을 바란다”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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