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매트릭스4: 리저렉션'을 보고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던 때를 떠올렸다. 장르도, 작품성도 다르지만 느낀 충격만큼은 동일한 무게다. 그리움과 기대감은 다른 감정이다. 애초에 기대조차도 하지도 않았지만 막상 알맹이를 마주하니 얼척이 없다. 하물며 유쾌함은커녕 불쾌감이 느껴진다. 대히트 시리즈의 영광은 없어진, 그저 빛바랜 '가문의 영광: 리턴즈'다.
영화 '가문의 영광: 리턴즈'(감독 정태원, 정용기)는 잘나가는 스타 작가 대서(윤현민)와 가문의 막내딸 진경(유라)을 결혼시키기 위해 애쓰는 장씨 가문의 모습이 그려진다. 우연한 계기로 한 클럽에서 광란의 밤을 보낸 대서와 진경은 그날밤 함께 대서의 집에 들어가게 되고 그다음날 그 모습을 목격한 장 씨 가문의 형제들은 막내딸을 책임지라는 이유로 대서에게 결혼을 무조건 밀어붙인다.
시나리오부터도 두 사람이 결혼해야 하는 이유나 상황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남자가 여자를 책임져야 한다는 발상은 20년 전에나 영화에 등장하던 이야기다. 하지만 그저 한 집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형제들의 이야기를 핑계로 냅다 결혼까지 밀어붙이는 집안의 이야기는 흡사 보쌈이라는 악습을 보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이 개연성 따위 없는 서사의 중심은 대서와 진경 사이의 로맨스다. 하지만 로맨스에 집중할 새도 없이 20년 전 유머 코드가 담긴 신들이 몰입을 방해한다. 비속어가 담긴 대사가 빗발치는 가운데 성적인 유머가 담긴 대사들이 과하도록 어우러져 웃기긴 커녕 시대착오적인 마인드만이 느껴져 불쾌감을 유발한다.
더불어 김수미가 맡은 홍덕자를 제외한 모든 여성 캐릭터들은 철저히 남성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나같이 현실감 없고 삐걱대기만 한다. 유라는 순종적인 역할로 나오며, 가족의 말이라면 당장에라도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의견조차 표현하지 않는다. 집에서만 갇혀 지내서 자란 것도 아닌, 커리어를 한창 잘 쌓아오고 있던 여성이 2020년대에 자신의 결혼을 강행시키는 부모님께 반항 섞인 대사를 한마디도 뱉지 않는 캐릭터는 모순이 흘러넘친다.
게다가 대서의 원래 애인이었던 여성은 또 어떠한가. 오래전 미디어에서 남자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나쁜 여성'을 표현한 예를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명품 백만 사준다면 무엇이든 용서가 되며 자신 또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여성. 양다리를 걸치는 꽃뱀으로 등장해 명품 백이 사랑에 있어서 양분의 기준이 되는 인물로 소비된다.
이외 등장인물과 그들의 연기에 대한 부분은 글을 더 쓰기 짜증이 일 정도다. 홍덕자의 며느리 역으로 나오는 서효림의 어색한 사투리 연기는 경상도 출신으로서 지켜보기에 불쾌할 뿐이다. 뒤에 '~노'만 붙이면 다 사투리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연기와는 연이 없었던 추성훈의 연기력이 더 나아 보였다.
기존 주연 배우들 이외에 그나마 이한위와 같은 좋은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특별출연처럼 합세한 신들이 있지만 캐스팅 라인업에 나온 여성 배우들을 보고 몸매를 평가하며 '차력사가 아니냐'고 말한다던가 등의 대사들은 정말 쓸데없기 그지없다.
작품 후반부에는 인기 작가 대서가 진경이 일하는 스튜디오에서 받은 시나리오를 흥미롭게 읽는 장면이 등장한다. 대사에서 잠시나마 언급된 내용처럼, 차라리 비혼주의자의 로코에 호러 장르를 섞은 그 작품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적어도 '가문의 영광: 리턴즈'보다는 나은 작품일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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