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가 농산물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를 두고 우크라이나와 갈등이 고조되자 20일(현지 시간) 무기 지원 중단을 공식 선언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무너지면 곧바로 안보에 위협을 받는 탓에 그간 적극 무기를 지원하는 등 강한 동맹관계를 이어 왔으나, 경제적 마찰에 태도를 바꾼 셈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둘러싼 결속력이 유럽 각국의 엇갈리는 이해관계 속에 삐걱대는 모습을 전면에 노출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영향이 주목된다.
BBC 등 외신들은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폴란드는 더 현대적 무기로 무장하고자 한다”며 “더 이상 우크라이나로 무기를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곡물 수출을 두고 우크라이나와 마찰을 빚음에도 지원을 계속하겠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가 이런 식으로 갈등을 확대한다면 폴란드로의 수입금지 대상을 더 추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날 유엔총회 연설에서 폴란드의 농산물 금수조치를 강도 높게 비판한데 따른 행동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수입금지 조치 안팎의 상황을 ‘정치적 극장판’으로 칭하며 일부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와 연대를 가장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에만 도움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폴란드 외교부는 자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를 초치해 강하게 항의했다. 외교부는 “전쟁 첫날부터 우크라이나를 지지해온 폴란드 입장에서는 부당하다”며 “다자간 포럼에서 폴란드를 압박하거나 외부에 제소하는 것은 이견 해결이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올레그 니콜렌코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은 자국 대사가 농산물 금수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을 설명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한 건설적 방안을 제시했다고 반박했다.
양국은 최근 농산물 금수조치를 두고 갈등 중이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러시아의 침공 이후 흑해가 봉쇄되면서 농산물 수출에 어려움을 겪었고, 흑해 대신 육로와 다뉴브강 수로 등을 수출 통로로 이용해 왔다. 이에 우크라이나 주변 폴란드·헝가리·불가리아·루마니아·슬로바키아 등 5개국은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이 싼값에 유입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다.
유럽연합(EU)은 갈등이 번지자, 이들 5개국에 대해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의 직접 수입을 한시적으로 금지하고 경유만 가능하도록 제한했다. 이후 4개월 만인 이달 15일 이들 국가에서 시장 왜곡 현상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직접 수입 금지 조처를 16일부터 해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폴란드·헝가리·슬로바키아는 EU 결정과 관계 없이 자체적 금수조치 시행을 밝혔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이들 3개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로 하면서 갈등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AFP통신은 폴란드에서는 다음 달 총선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수입이 특히 민감한 문제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처음부터 우크라이나를 위해 많은 일을 했으므로 그들이 우리의 이익을 이해하기를 기대한다”며 “그들의 모든 문제를 존중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 농민의 이익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