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층 5명 중 1명은 가족을 돌보기 위해 직장을 포기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재단법인 돌봄과미래는 지난 6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45∼69세 1000명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돌봄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돌봄이 가족과 우리 사회에 재난적 수준에 이르렀다고 21일 밝혔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절반 이상(51.7%)은 가족 중 노인(44.4%)이나 환자(8.6%), 장애인(7.3%) 등 돌봄이 필요한 구성원이 있다고 답했다. 돌봐야 할 가족이 2명 이상인 경우도 24%나 됐다.
구체적으로는 돌봄이 필요한 구성원을 가족이 전적으로 돌본다는 응답이 55.4%, 가족과 요양보호사가 함께 돌본다는 응답은 26.8%였다. 돌봄이 필요한 가족이 있는 중장년층 5명 중 4명이 직접 돌본다는 의미다.
가족이 전적으로 돌보는 경우 하루 평균 8.1시간, 요양보호사와 함께 돌보는 경우에도 평균 6.4시간을 돌봄에 할애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돌봄 부담은 고스란히 삶의 무게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이번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의 62.6%는 '돌봄으로 인해 우울감·스트레스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가족 간 갈등을 경험했다'는 응답도 58%에 달했고, 가족 돌봄으로 하던 일을 중단하거나 직장을 그만둔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20.3%였다.
이들은 '노동과 여가시간 부족'(71.8%), '의료비·간병비 등 경제적 부담'(69.3%), '건강악화나 심리적 소진'(65.8%) 등을 가족 돌봄의 현실적 어려움으로 꼽았다. 이같은 어려움으로 인해 돌봄이 필요한 가족들을 불가피하게 요양시설에 입소시킨 경우 '미안함'(92.9%)과 '죄책감'(76.2%)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장년층은 가까운 미래에 돌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연령대다. 하지만 응답자의 82.8%는 자녀로부터 돌봄 받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자녀들로부터 돌봄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는 21.9%만 '그렇다'고 답했다. 자식, 부모 세대의 모든 부양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면서도 정작 자신은 불확실한 미래에 시달려야 하는 '끼인 세대'의 불안감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돌봄이 필요해졌을 때 나를 돌볼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문항에는 '요양보호사나 간병인 등 가족 외 다른 사람'(51.4%)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배우자'(29.5%),가 뒤를 이었다.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응답도 15.4%에 달했다. 조사 대상자의 47.4%는 '자신이 고독사할 가능성이 50% 이상'이라고 답했다. 원하는 임종 장소는 '호스피스 병동이나 시설'(45.4%), '집'(36.6%), '의료기관'(10.2%), '요양원이나 요양병원'(7.8%) 등을 꼽았다.
중장년층의 83.9%는 현재 국가와 사회가 제공하는 돌봄 서비스가 부족하다고 답했으며, 95.5%는 앞으로 돌봄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용익 돌봄과미래 이사장은 "돌봄 문제는 이미 대부분 가정의 절박한 문제이고 재난 수준에 와있다. 하지만 계속 걱정만 하고 대책은 너무 미비하다"며 "국회도 시급히 법안을 만들어 지역사회 돌봄이 정착되고 획기적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인력과 예산을 뒷받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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