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22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2010년 이래 중국·러시아·인도·브라질·남아공 5국 체제를 고수해온 브릭스가 과감한 외연 확장을 결정했다. 6개 신규 회원국 중 국제적 이목이 집중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등 중동 핵심 국가들이지만 아프리카 대륙의 이집트·에티오피아 합류가 갖는 의미를 간과할 수 없다. 남아공 스텔렌보스대의 팀 자존츠 연구원은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뿔’의 핵심 국가이며 이집트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로를 통제하는 국가”라면서 “이들의 참가로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한층 강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 9월 9일,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아프리카 54개국 정부 연합체인 아프리카연합(AU)이 G20의 영구 회원으로 받아들여졌다. 7년간 G20의 문을 두드려온 AU가 회원국 지위를 획득한 데는 개발도상국의 세 규합에 앞장서온 의장국 인도의 역할에 미국과 중국·유럽연합(EU) 등의 폭넓은 지지가 뒷받침됐다. 국제 정보 자문 그룹 판게아리스크의 로버트 베셀링 최고경영자(CEO)는 “국제 무대에서 벌어지는 국가 세력들 간 경쟁이 AU가 G20에 가입하는 추동력이 됐다”며 “브릭스를 견제하려는 지정학적 경쟁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지정학의 체스판에서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존재감이 부쩍 커졌다. 미국과 중국·러시아가 주축이 된 세계 경제·안보의 블록화 경쟁에 불이 붙은 가운데 막대한 자원과 성장 잠재력에 더해 정치·안보 측면에서도 전략적 가치가 높아진 아프리카 대륙이 세 불리기에 혈안인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극심한 빈곤과 기아, 정치 혼란에도 세계 각국을 아프리카로 불러 모으는 가장 강력한 힘은 ‘자원’이다. 아프리카는 세계 광물 매장량의 30% 이상이 집중된 땅으로 특히 전기차·배터리 등 저탄소 전환 및 신재생에너지의 핵심 소재인 리튬·코발트·니켈 등이 풍부하다. 기술 패권을 노리는 각국의 공급망 확보 경쟁에서 세계 코발트 공급의 70%를 차지하는 콩고민주공화국과 세계 6위 리튬 생산국인 짐바브웨를 비롯해 아직 본격적인 자원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나라들까지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아프리카가 각광받는 이유다.
국제 질서의 급변 속에 정치적 영향력도 전에 없이 커졌다. 1국 1표를 행사하는 유엔총회에서 전체 회원국의 28%(54개국)를 차지하는 아프리카는 서구와 중국·러시아 사이에서 강력한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국제 권력이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두 거대 블록이 국제사회의 지지라는 명분하에 특정 어젠다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미래 시장으로서의 폭발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아프리카는 14억 인구의 60%가 25세 이하인 젊은 대륙으로 신흥 개도국 중에서도 단연 성장 잠재력이 높다. 2060년에는 아프리카 중산층 인구가 11억 명으로 불어날 것이라는 전망 또한 있다. 지정학적으로도 세계 교역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로를 보유한다. 아프리카 북동부를 가로질러 인도양과 연결되는 홍해 항로는 연간 세계무역의 10% 이상을 책임진다. 서부 기니만 역시 미국과 유럽으로 향하는 석유와 물자의 주요 수송로다.
中 ‘일대일로’·러 안보 협력으로 공세
아프리카의 환심을 노린 글로벌 각축전에서 단연 앞서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탈냉전과 함께 서방의 관여가 느슨해진 틈을 타 아프리카에 손을 뻗치기 시작한 중국은 1991년 이래 33년째 외교부장이 새해 첫 방문지로 아프리카를 찾을 정도로 이 지역에 공을 들여왔다. 특히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취임한 뒤로는 막대한 ‘차이나 머니’를 투입해 아프리카 주요 광물 채굴 및 기반 시설 운영권을 쓸어 담으며 이 지역을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의 핵심 거점으로 삼고 있다. 아프리카가 중국이 놓은 ‘부채의 덫’에 빠졌다는 비판 속에 2016년 최고로 치달았던 대(對)아프리카 채권은 이후 급감했지만 중국의 공격적인 광물 투자와 2009년 이래 아프리카의 최대 교역국 지위는 굳건하다.
구소련 시절부터 반(反)서방 정권들에 군사원조를 제공하며 유대 관계를 형성해온 러시아도 안보 파트너로서 아프리카 국가들과 꾸준히 유대를 넓혀왔다. 특히 2014년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서방의 제재에 맞서 우방 확보를 위한 군사 협력, 자원 외교를 강화했는데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열린 유엔 긴급 특별 총회에서는 아프리카 24개국이 러시아 규탄 결의안을 거부해 서방에 경종을 울렸다. 2020년 말리를 시작으로 차드·기니·수단·부르키나파소, 올 7월 니제르에 이르기까지 사하라 이남 지역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일명 ‘사헬지역’에서 연쇄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데는 민간 군사 기업 바그너그룹을 앞세운 러시아의 입김이 배후로 작용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다.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붕괴와 중국·러시아의 공격적인 세력 확장에 미국 등 서방도 다급해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014년 이후 8년 만에 개최한 미·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아프리카가 성공할 때 미국이 성공하고 전 세계도 성공한다”며 향후 3년간 총 550억 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다른 국가들의 움직임 역시 분주하다. 올해 4월부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줄줄이 아프리카 땅을 밟았다. 올해 G20 정상회의에서 아프리카에 크게 힘을 실어준 인도가 글로벌 사우스의 맹주 자리를 둘러싼 중국과의 경쟁에서 아프리카를 ‘주전장’으로 삼고 있다는 분석 또한 나온다.
자원민족주의·기후 문제서 阿 영향력
아프리카 국가들도 스스로 달라진 글로벌 위상을 자각하고 국제 무대에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올 6월 남아공과 잠비아·세네갈·콩고·우간다·이집트 등 아프리카 6개국 평화 사절단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국제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달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최초의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에서는 AU 국가들이 세계 지도자들에게 글로벌 탄소세 도입을 촉구하는 ‘나이로비 선언’을 채택했다. 나이지리아와 남아공 등 역내 강대국들은 이 기세를 몰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 획득까지 노리고 있다.
강대국들의 ‘자원 착취’에 대한 경계와 함께 자원 민족주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중국 CMOC그룹이 운영하는 세계적 코발트 광산 텐케 풍구루메의 로열티 분쟁을 이유로 올 4월까지 이 광산에서 채굴한 자원의 수출을 10개월간 금지했다. CMOC가 8억 달러를 지급한 뒤 수출을 허가한 콩고 정부는 외국 투자가들의 모든 광산 합작 투자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지난해 말에는 짐바브웨가 미가공 리튬에 대한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가열되는 글로벌 블록화 경쟁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달라진 인식 속에 국제정치의 방정식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국립외교원의 김동석 아프리카·중동연구부 교수는 “식민 트라우마와 냉전 경쟁의 피해를 겪은 아프리카는 기본적으로 중국과 서구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는 비동맹 전통이 강한 지역”이라며 “과거 서구 의존적이던 역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아프리카 대륙이 EU와 같은 단합력을 갖추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2019년 AU 경제 공동체인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가 본격 출범한 것은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열이 깊어지는 세계에서 국제적 지위를 각성한 아프리카가 새로운 글로벌 질서의 향방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후발 주자 韓, 단기적 접근으론 한계”
미국·중국·러시아뿐 아니라 일본·유럽·터키 등 세계 각국이 내민 수많은 손길 중 아프리카 국가들이 누구의 손을 잡을지는 불확실하다. 현재 많은 아프리카 국가는 정권의 이익을 위해 부패나 인권 문제의 꼬리표를 달지 않고 넉넉한 자금줄을 대온 중국과의 협력을 택하고 있다. 역내 20개국 이상과 군사협정을 체결하고 무기의 40%를 공급하는 러시아의 입김도 강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뿌리 깊은 반식민주의·반서구 정서가 중국과 러시아에 유리하게 작용한 면이 크다. 하지만 황규득 한국외대 아프리카학부 교수는 “아프리카가 신냉전 블록 경쟁에서 중국·러시아에 기울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달라진 글로벌 질서에서 유리해진 판세를 읽어낸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특정 국가의 편을 고수하기보다는 자국의 이익에 유리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도 핵심 광물 확보부터 부산엑스포 유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안에서 아프리카와의 협력이 절실하지만 아프리카 외교전에서는 한참 뒤처진 후발 주자다. 2006년 노무현 정권 당시 발족한 ‘한·아프리카 포럼’은 1993년 일본이 발족한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 등에 비해 규모나 성과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 54개국 정상을 초청해 최초의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개최할 예정이지만 전문가들은 근시안적인 외교 대응을 경계한다. 황 교수는 “4강 외교에 주력해온 우리나라는 저개발국에 대해 단기적 필요에 따라 접근하느라 선제적 대응을 못 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상호 관심과 이해, 소프트파워를 활용한 공공·문화 외교에 기반해 장기적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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