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이민 폭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 정부가 국경 장벽을 추가 건설하기로 한 데 이어 멕시코에 국경 관리 공조를 요청했다. 나아가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을 강제 추방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불법 이민 억제 조치가 동시다발적으로 발표되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이민정책이 강경 노선으로 기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안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5일(현지 시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미국·멕시코 고위급 회담에서 “우리는 국경이 안전한지 확인하기를 원한다”며 “(국경 안보는) 누구도 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공동의 접근 방식, 실천, 책임에 의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합법 이주를 늘리고 불법 이주를 인도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발언은 미국 정부가 같은 날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추가 건설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나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미 국토안보부는 멕시코와 면한 텍사스주 남부 스타카운티에 장벽을 건설하기 위해 생태계 보호 등과 관련된 26개 연방법 적용을 면제한다고 발표했다. 공약 철회 논란이 일자 바이든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전임 행정부가 2019년 회계연도에서 장벽 건설에 할당했던 예산을 올해 안에 써야 해 어쩔 수 없었으며 자신은 국경 장벽에 여전히 부정적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하지만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어 “거꾸로 가는 조치”라고 반발해 멕시코가 미국의 공조 요청에 적극적으로 화답할지는 미지수다.
미국 정부는 나아가 베네수엘라 불법 이민자 강제 추방 재개 방침도 공개했다. 블링컨 장관과 함께 멕시코시티를 방문한 알레한드르 마요르카스 미 국토안보부 장관은 이날 “(임시 보호조치 적용 기준인) 7월 31일 이후 미국에 도착한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미국에) 남아 있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추방 재개 방침을 밝혔다. 최근까지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열악한 경제 및 인권 상황을 감안해 이들에 임시 체류 자격을 부여해왔다. 하지만 지난달에만 약 5만 명의 베네수엘라인이 멕시코 국경을 통해 미국에 불법 입국하자 결국 백기를 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불법 이민 단속 강화 조치가 잇따르며 바이든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의 공세에 대비해 이민정책 노선을 전환하고 있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