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눈이 많이 나쁘대. 엄마처럼 안경 써야 해?"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워킹맘 이모(42·여)씨. 학교 검진을 받고 온 딸의 시력검사를 위해 동네 안과를 찾았다가 당황했다.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원인이 사시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와 대화할 때 다른 곳을 본다는 느낌 받은 적 없으세요?” 사시 전문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권유와 함께 이 같은 질문을 듣는 순간, 이씨는 엄마 말에 집중하지 않는다며 혼을 냈던 기억을 떠올렸다. ‘학교에 다니면서 외모에 부쩍 신경을 쓰는 딸 아이가 사시 때문에 놀림을 당하진 않을까’ 조급해진 이씨는 치료 정보를 검색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 생후 3개월 지나도 초점 안맞고 두 눈이 정렬되지 않으면 ‘사시’ 의심
사람의 뇌는 좌우 양쪽의 눈에서 받아들이는 각각의 정보를 하나로 통합해 3차원 공간을 인식한다. 한 눈으로도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이 없다고 여겨질 수 있으나, 한쪽 눈을 가린 채 계단을 내려가거나 바늘에 실을 꿰는 등 정교한 작업을 해보면 두 눈의 융합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할 수 있다.
사람은 정상적으로 정면을 바라볼 때 두 눈의 까만 동자가 모두 눈 가운데에 위치한다. 사시는 물체를 바라보는 양쪽 눈의 방향이 달라 초점이 맞춰지지 않는 상태다. 정면을 볼 때 한쪽 눈의 까만 동자는 눈 가운데에 있지만 반대편 눈의 까만 동자는 눈의 안쪽 또는 바깥쪽으로 돌아가 있다.
까만 동자가 돌아가는 방향에 따라 코 쪽으로 치우치면 내사시, 귀 쪽으로 치우치면 외사시, 위쪽이면 상사시, 아래쪽이면 하사시 등으로 부른다.
한쪽 눈이 항상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 있는지 가끔 돌아가는지에 따라 항상 사시, 간헐 사시로도 구분할 수 있다. 간헐 사시의 경우 평소에는 정상인데 △먼 곳을 볼 때 △졸리거나 피곤할 때 △화낼 때 △아플 때 △멍하니 응시할 때 등 편위되는 상태가 가끔 나타난다.
◇ 10살 아래 환자만 9만 여명…사시각 작고 가끔 나타나면 알아차리기 어려워
사시의 원인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두 눈을 바로잡기 위한 융합력 이상, 눈 근육이나 안와내 조직의 구조적 이상 등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사시는 국내 소아의 약 2~4%에서 나타날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토대로 2022년 연령별 사시 환자 분포를 살펴보면 10세 이하 아동이 9만 245명으로 전체 진료인원 17만 8560명의 과반을 차지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인은 까만 동자가 가끔 바깥쪽으로 돌아가는 간헐 외사시가 가장 흔한데 대개 3~4세 전후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눈동자가 돌아간 각도가 클 때는 알아채기 쉽지만 각도가 작고 간헐적으로 사시가 나타나면 부모도 잘 모를 수 있다. 실제 취학 전에 진단되지 않으면 초등학교 저학년인 만 8~9세 무렵 사시 의심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많다. 피곤할수록 간헐 외사시가 더 자주 나타나다 보니 학업량이 늘어나는 중고등학생 때 불편감을 느껴 내원하는 경우도 있다. 정승아 아주대병원 안과 교수는 “간헐 외사시 환아의 절반 정도가 밝은 곳에 나가면 사시가 주로 나타나는 눈을 찡그리는 증상을 보인다”며 “피곤하거나 아플 때, 멍하게 있을 때, 아이의 두 눈 위치가 반듯한 지 확인하면 간헐 외사시를 조기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 사시 진단 놓치면 ‘약시’ 위험↑…수술은 10세 이전에만 건보 적용
갓 태어난 아기는 물체를 보고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자라면서 눈을 계속 사용하다보면 6세 정도가 되어 성인의 시력에 도달한다. 그런데 시력이 발달해야 할 시기에 사시인 눈을 그대로 두면 정면을 보는 눈만 계속 사용하기 때문에 한쪽 눈은 시력발달이 되지 않고 약시가 될 수 있다. 약시의 치료는 반드시 8세 이전에 이뤄져야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기를 넘기면 사실상 약시 치료가 어렵다. 어렸을 때 사시 진단을 놓치면 평생 시력장애가 남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시력에 영향이 없더라도 사시를 방치하면 양안시 기능장애로 입체시가 저하될 수 있고 사춘기 청소년의 경우 외관상의 이유로 놀림을 받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으므로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사시 치료는 원인과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 간헐 외사시의 근본 치료법은 수술 뿐이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수술 시기는 초등학교 입학 전인 6~7세 쯤인데 만 10세 이전에만 수술하면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10세 이후에는 미용적 개선 목적으로 간주해 시술 비용이 전액 환자 부담이다. 전신질환, 안와질환, 눈과 눈 주위 수술, 외상 등으로 사시가 발생해 복시(주시하는 하나의 물체가 두개로 보이는 현상)와 혼란시(주시하려는 물체와 다른 물체가 겹쳐 보이는 현상)가 있는 경우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보험 적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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