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대법원이 ‘수장 공백 장기화’라는 위기에 봉착했다. 대법원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대법원이 운영되는 건 1993년 김덕주 전 대법원장이 재산 공개에 따라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퇴한 이후 30년 만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전원합의체 심리·판결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등 사법부 기능에 큰 장애가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법조·국회에 따르면 지난 6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출석 의원 295명 가운데 찬성 118명, 반대 175명, 기권 2명으로 집계됐다. 표결은 무기명 전자투표로 이뤄졌다. 이는 민주당과 정의당이 본회의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부결’을 당론으로 결정하면서 야권에서 반대표가 대거 나온 결과로 풀이된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것은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이후 35년 만이다.
문제는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이미 열흘을 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24일 퇴임했으나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사법부 수장 공백은 장기화될 수 있다. 새 대법원장 후보자가 지명되더라도 국회 인사청문회 등 절차상 최종 임명되기까지는 최소 두 달 가량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의 경우도 지난 8월 22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으나, 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거쳐 국회 임명동의안 표결이 이뤄지기까지 45일이 소요됐다. 대법원장 장기 공석으로 사법부 기능이 장애를 초래하는 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법조계 안팎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우선 제기되는 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판결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이다.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는 전원합의체는 일선 법원의 법률 해석을 바꾸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존재 이유’로 평가받는다. 대법원장을 포함한 13명(법원행정처장 제외)이 대법관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면 의결이 가능하다. 다만 대법원은 지난달 25일 긴급대법관 회의를 열고,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 범위 등에 대해 논의한 결과 전원합의체 선고를 내리지 않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안철상 대법원장 권한대행(대법관)을 재판장으로 전원합의체를 개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칫 정치·사회적 논란이 큰 사건인 경우 책임은 안 권한대행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점은 부담 요소다. 대법원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나온 전원합의체 결과에 사건 당사자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안 대법관도 내년 1월 민유숙 대법관과 함께 퇴임을 앞두고 있다. 대법관에 대한 제청권은 헌법이 정한 대법원장의 권한이다. 이를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제청이 불가능하면 대법원 인사도 표류할 수 있다. 또 내년 2월에는 전국 법관 정기인사도 예정돼 있다. 대법원장의 부재가 대법관은 물론 전국 법관 인사 등까지 도미노처럼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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