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국가 형사 사법 체계에 대한 대대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헌재 판단에 앞서 이뤄진 윤 전 대통령 수사·기소 과정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 등에 따른 구조적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가 형사 사법 체계에 대한 수사기관 사이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라도 공수처법·형사소송법 등의 개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이 11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은 단 1건에 불과했다. 그나마 내용도 수사처 검사의 자격 요건을 기존 7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내용이다. 9건(1건은 철회)이 계류 중으로 △수사·공소 제기 대상 일치 △정원 확대 △연임 제한 폐지 △수사 범위에 국회 불출석, 모욕죄 추가 등의 내용이 담겼다. 공수처가 설립된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공수처법 개정안은 35건 발의됐으나 30건이 임기 만료로, 4건은 대안 반영에 따라 폐기됐다. 국회 표결에 따라 가결된 것은 1건뿐이었다. 공수처가 출범한 지 4년이 넘었지만 법률 개정 등 보완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방치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기소 과정에서 공수처의 수사·기소 범위 등 문제점이 광범위하게 드러난 데다 해당 재판의 쟁점으로 부각될 수 있는 만큼 법률 개정을 통한 보완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법적 절차 문제가 자칫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제기되는 부분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가능하다. 하지만 불소추 특권이 있는 대통령을 수사할 수 있는 내란죄는 수사 범위에서 빠져 있다. 특히 공수처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검찰총장,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의 직권남용·알선수재 등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기소가 가능하지만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에 대해서는 수사권만 있을 뿐 재판에 넘길 권한이 없다.
공수처 수사 사건에 대해서도 수사기관 사이 이첩 관계만 명시돼 있고 검찰의 보완 수사 여부 등은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 윤 전 대통령 측이 내란죄 재판에서 공수처가 송부한 증거가 위법하고 검찰에 보완 수사권이 없어 증거능력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을 취소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 또한 “(공수처) 수사 과정의 적법성에 관한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와 검찰과 경찰 사이 수사권이 나눠져 있지만 여전히 경계선은 불분명하다”며 “공수처·검사 사이의 구속 수사 기한이나 관할권 등에 대해서도 법률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탓에 영장 쇼핑 등의 사태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지낸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 역시 “구속 기간, 수사 범위 등 공수처법에 대한 개정 논의가 서둘러 이뤄져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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