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화학 기업들이 유럽 반도체 시장 진출을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이 역내 반도체 산업 활성화에 시동을 걸자 대만 업체들이 시장 선점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양상이다.
빈센트 리우 LCY그룹 최고경영자(CEO)는 11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독일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며 “유럽 시장은 향후 우리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LCY그룹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에 반도체용 화학약품을 공급하는 기업이다. FT는 LYC그룹 외에도 3곳의 TSMC 화학약품 공급 업체들이 유럽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만 기업들의 유럽 투자 검토는 EU가 지난달 반도체법을 발효한 데 따른 움직임이다. EU는 역내 반도체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반도체법을 통해 EU 차원에서 총 430억 유로를 기업들에 지급하기로 했다. 이에 TSMC는 8월 독일 드레스덴에 100억 유로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이 사업에 독일 정부가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금액은 50억 유로에 달한다. 리우 CEO도 2주 전 독일을 방문해 자사를 지원해달라는 로비를 벌였다.
특히 대만 화학약품 업체들은 유럽의 반도체 개발이 장기간 지연된 만큼 자신들의 기술이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리우 CEO는 “(독일의) 인피니온 같은 기업들은 공급 업체의 설비가 수십 년이 됐기 때문에 양질의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그들은 최첨단 화학약품이 얼마나 수율을 높일 수 있는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반도체는 세정·식각을 아우르는 전 과정에서 황산·이소프로필알코올 등 다양한 화학물질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첨단 화학 기업들이 유럽 반도체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은 양질의 반도체 관련 화학물질들을 순수입하고 있어 제대로 된 반도체 공급망을 갖추기 전까지는 사업성이 비교적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요 반도체용 화학약품 기업인 일본 도쿠야마도 이 같은 이유로 당분간 아시아 시장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태영 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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