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러시아와 중국은 이 혼란을 이용해 국제사회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이스라엘군 지원에 나선 미국이 정신없이 바쁜 틈을 타 서방 중심의 기존 국제 질서 흔들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국제사회의 힘의 균형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미국의 주요 지정학적 경쟁국들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선 러시아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보복 공습으로 수천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하는 상황을 보며 ‘서방 국가들의 위선’을 지적하고 있다. 앞서 미국·유럽 등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민간인까지 학살했다고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를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봉쇄와 비교하며 이스라엘인과 나치를 동일시했다. 가브리엘리우스 란트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외무장관은 “러시아인들은 이스라엘 분쟁이 가능한 한 오래가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방세계에 맞서 자신들의 서사를 강화하는 논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중동 내 다른 국가들이 참여하며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확대될 경우, 중동 발 석유 공급 감소로 전세계가 에너지 위기에 휩싸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서방이 가해온 러시아 석유·가스 수출 제한 규제가 무력화할 가능성도 있다.
대만을 두고 국제사회와 대립하는 중국 입장에서도 미국의 관심과 군사력이 중동으로 분산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대만 침공 가능성에 미국과의 무력 충돌 가능성도 대비하고 있었던 중국으로서는 부담이 덜해진 셈이다. 이번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에 대해 중국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했다. 지난 12일 왕이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셀소 아모림 브라질 대통령 국제 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팔레스타인 인민에게 정의를 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안톤 본다즈 프랑스 전략연구재단 연구원은 “중국은 미국을 불안 요인으로, 중국을 평화 요인으로 그리려고 한다”며 “중국의 목표는 개발도상국들에 보다 매력적인 대안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입장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은 경쟁국인 인도를 경제적으로 견제하는 데도 득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의 일대일로(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에 맞서 인도-중동-유럽의 철도·항구 등 인프라를 연결하는 구상이 지난달 미국 주도로 시작됐으나 중동 정세의 불안 가중으로 제대로 추진될지 불확실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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