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비상으로 지방자치단체 재정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정작 재난대응기금은 곳간에 쌓여만 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줄어들어 전염병 대응을 위해 지출할 비용은 줄어들었지만 지방정부는 이렇다 할 지출계획을 마련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자체가 유연하게 기금을 사용할 수 있는 만큼 갈수록 다양해지는 재난 예방·대비 차원에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행정안전부가 제출한 2020년부터 2023년까지의 ‘지방자치단체 재난관리기금·재해구호기금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재난 및 안전관리 차원에서 쌓아두는 재난관리기금 지출률은 2020년 77.7%에서 올해 7월 기준 7.9%로 급락했다. 지출액은 2020년 5조4460억 원에서 , 2021년 1조6670억 원, 2022년 1조9820억 원으로 감소했고 올해는 2820억 원에 그쳤다. 재해구호기금 지출률 역시 2020년 83.2%에서 2023년 24.0%로 떨어졌다. 올해는 7월까지의 지출 현황인 점을 감안해도 지출이 큰 폭으로 줄어든 셈이다.
지방정부는 법령에 따라 재난관리기금과 재해구호기금을 의무적으로 적립하고 있다. 재난관리기금은 모든 광역·기초지자체가 보통세의 1%, 재해구호기금은 광역지자체가 보통세의 0.5%(특별시는 0.25%)씩 각각 쌓는다. 올해 7월까지 재난관리기금은 3조5565억 원, 재해구호기금은 8066억 원이 적립해있다.
재난관리기금은 코로나19 확산 당시 긴급재난지원금 재원으로 수혈돼 쏠쏠하게 쓰였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세가 줄어든 이후 각 지방정부는 재난기금의 활용방안을 찾지 못하면서 지출이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코로나19가 대유행했던 2020년 재난관리기금은 7조91억 원, 재해구호기금은 2조1280억 원 가량을 적립하고 이 중 80%를 지출했다. 그 후 3년간 기금현액은 3조~4조 원 수준으로 유지되었지만, 지출액은 크게 감소했다.
재해구호기금의 경우 임시주거시설·생필품 제공, 심리회복 지원 등 재해구호법상 정해진 ‘재해구호’에 한정돼 있어 재난의 발생과 규모에 따라 기금이 쓰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재난관리기금은 지방정부의 재난·안전의 예방과 대비, 대응, 복구 등 비교적 용도가 광범위하다. 정부는 재난관리기금 활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 2019년 말 특정 항목을 제외하고 지출할 수 있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했다.
지자체별로 보면 대구시는 2020년에는 적립한 재난관리기금의 93.3%를 지출했으나, 올해는 7월까지 3.6% 쓰눈데 그쳤다. 서울시(87.7%→4.5%), 강원(86.8%→14.9%), 인천시(94.1%→22.6%) 또한 재난관리기금 지출률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기초지자체가 광역지자체보다 감소 폭이 더 컸다.
용혜인 의원은 “코로나19 이후 재난기금은 법정적립액을 훌쩍 넘겨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고 있지만 지방정부가 이를 적극 활용할 계획을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자체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고, 정부 차원에서 재난관리기금 지출 활용 지침을 정리해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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