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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중독, 사라진 미래 먹거리 [여명]

황정원 마켓시그널부장

여야 추경 기싸움, 지난 대선과 닮은 꼴

선거판 돈풀기 유혹에 재정원칙도 흔들

기술패권 시대, 기업 각자도생 내몰려

추경 불가피하면 미래 산업 우선돼야

황정원 마켓시그널부장




국내 최장수 경제 사령탑인 홍남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홍백기(홍남기+백기 투항)’로 불렸다.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에 밀려 소신 없이 끌려다닌다는 이유로 붙여진 별명이다. ‘벚꽃 추가경정예산안’이라는 말이 나온 시기도 홍 전 부총리 때다. 코로나19 펜데믹 속에 본예산이 제대로 풀리기도 전인 2021년 3월 2일 정부의 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홍 전 부총리는 재임 기간 7차례의 추경을 포함해 총 11차례 예산을 편성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국가채무가 급증하고 재정건전성이 악화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래도 추경 증액을 반대하고 사표를 던지면서 ‘재정 파수꾼(곳간지기)’ 역할을 아예 외면하지는 않았다.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는 막말을 들으면서도 끝까지 피해 계층을 대상으로 한 ‘선별 지원금’을 고수했다. 단 한 차례 나눠준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에서 증액된 것이었다.

12·3 비상계엄에 따른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조기 대선이 예고되면서 추경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우원식 국회의장,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참여하는 여·야·정 국정협의회 4자 회담에서도 추경이 본격 논의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와 고용 한파, 내수 부진이 겹치며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1% 중반까지 추락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금 현 상태에서 추경을 15조~20조 원 규모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표는 13조 원 규모의 지역화폐 (1인당 25만 원 소비쿠폰) 지급을 포함한 34조 7000억 원 규모의 ‘슈퍼 추경’안을 제안했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도 내수 회복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추경 편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조기 대선 정국을 앞두고 여야가 추경 핵심 예산에 대한 주도권을 쥐기 위해 기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지난 대선이 열렸던 2022년 초와 비슷하다. ‘선거용 돈 풀기’라는 비판과 함께 20대 대선을 앞두고 나온 첫 추경안은 결국 정부안보다 3조 원 증액된 약 17조 원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경기 부양을 위한 2차 추경까지 편성됐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추경 카드를 꺼내는 것은 흔한 레퍼토리다. 올해도 여야 대선 후보가 득표 전략으로 추경을 내세울 것이 뻔해 보인다. 2020년 총선을 비롯해 선거판에서 달콤한 효과를 얻어봤기에 헬리콥터식 현금 살포가 계속 눈에 아른거리는 것일까. 눈앞만 보는 추경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일 테다. 그러다 보니 재정 당국이 수십 년간 지켜온 재정 운용의 원칙도 크게 흐릿해졌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추경 요건은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경기 침체나 대량 실업 등으로 제한돼 있다. 이미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펑크’로 재정 여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추경을 편성하려면 적자 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조달해야 한다. 국채 발행이 증가하면 금리 상승(채권 가격 하락)으로 인한 물가 불안과 재정건전성 악화라는 부작용이 부메랑처럼 따라온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는 올해 투자 계획을 묻자 “한국에서 투자할 만한 섹터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미 뒤처진 인공지능(AI) 분야를 비롯해 바이오·로봇 등의 분야에서 비전을 찾지 못했다는 얘기다. 과거 정부가 나서서 자동차·반도체 등의 주력 산업을 육성했듯 지금 우리에게는 국가 산업 전략 마련을 위한 지원책이 시급하다.

현장에서는 전 세계적인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 국가 차원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재정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인재 육성 차원에서도 국가 단위 전략 수립이 필요한데 개별 기업은 각자도생 상황으로 내몰려 있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으나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꼭 추경을 해야 한다면 경기 부양과 함께 미래 먹거리 육성을 위해 가장 시급한 분야에만 투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걸핏하면 추경부터 찾는 재정만능주의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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