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번복하고 팬들 곁으로 돌아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하 '그대들')가 개봉 6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스튜디오 지브리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수성한 '그대들'로 인해 한국 영화들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대들' 난해함 투성이에도 흥행ing =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00만 관객 수를 달성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들'은 지난 4일 기준 136만 3980명의 누적 관객 수를 돌파했다. 이에 비해 같은 날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한 '소년들'(감독 정지영)은 18만 4971명에, 5위를 차지한 '용감한 시민'(감독 박진표)은 23만 5823명에 그쳤다. 개봉 6일째에 100만을 넘긴 '그대들'에 비하면 매우 저조한 성적과 속도를 보이고 있다.
'그대들'은 군수공장장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소년 마히토가 어머니를 잃은 후 이사 간 곳에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게 되는 이야기가 그려진 작품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과 개연성 부족한 서사, 제국주의 미화 논란 등 다양한 감점 요소에도 '그대들'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작들 중 가장 빠른 흥행 속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 영화 흥행, 어쩌다 이렇게 됐나...무거운 소재, 부족한 상영관 수 = 흥행 부진의 배경에는 11월에 개봉한 한국 영화들 중 주말 박스오피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가족 단위 관객들이 즐길만한 소재가 없었다는 점이 있었다. '소년들'은 '삼례 나라슈퍼 사건'이라는 실화를 모티브로 황준철 반장(설경구)이 가해자 누명을 썼던 세 소년들을 도와주는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용감한 시민'은 학교 내 학교폭력 가해자인 한수강(이준영)을 물리치는 선생님 소시민(신혜선)의 고군분투가 그려진다. 둘 다 무거운 사회 문제들로 인한 잔혹한 장면들이 포함돼있기에 가족 관객들이 선택하기에는 힘들 수도 있다는 평이다.
무거운 소재 이외에도 상영관 수가 부족하다는 점 또한 흥행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소년들'과 '용감한 시민'이 '그대들' 이후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영관 수는 압도적으로 '그대들'에게 몰렸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그대들'의 스크린 점유율은 개봉 당일인 지난달 25일, 총 1733개 관으로 전체의 27.8%를 차지했으며 이후 단 하루도 10%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며 스크린 점유율 1위를 유지했다. 그에 비해 '소년들'은 2위로 평균 1000개, '용감한 시민'은 4위에 머물며 평균 600개 스크린 수를 유지해오며 상대적으로 낮은 상영관 수를 확보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 데자뷔인가...계속될 '재패니메이션'의 열기 = 이러한 현상은 2023년을 장식한 두 '재패니메이션(재팬과 애니메이션의 합성어)'인 '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와 '스즈메의 문단속'(감독 신카이 마코토)을 떠올리게 만든다. 국내에서 476만 관객 수를 돌파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556만 관객 수를 돌파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이야기와 작화, 그리고 기승전결이 완벽한 서사로 감동을 선사하며 남녀노소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반면, 당시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함께 지난 1월 개봉한 한국 영화의 관객 수는 처참했다. '교섭'(감독 임순례)은 172만 명, '유령'(감독 이해영)은 66만 명, '스위치'(감독 마대윤)는 42만 명에 그쳤다. '스즈메의 문단속'의 경우 더욱 큰 패배를 맛봤다. 지난 3월 개봉한 '소울메이트'(감독 민용근)는 23만 명, '대외비'(감독 이원태)는 75만 명, '웅남이'(감독 박성광)는 31만 명에 그치며 100만 관객 수조차 돌파하지 못했다. 이렇게 올해 상반기 내내 한국 영화들은 박스오피스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에게 굴복했다.
'그대들' 이후에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진격은 계속될 예정이다. 오는 15일 개봉 예정인 '금의 나라 물의 나라'(감독 와타나메 코토노)는 적대적인 국가의 왕자와 공주가 결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일본의 대표 라이징 스타로 꼽히고 있는 카쿠 켄토, 하마베 미나미가 각 나란바야르 왕자, 사라 공주 역의 목소리를 맡았으며 이외에도 유명 성우진들이 합세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던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 워즈' 제작진이 작업에 참여해 섬세한 작화와 탄탄한 서사 구성으로 미리 해외에서는 호평을 받고 있다. '진격의 거인'을 연출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도 유명한 히라오 타카유키가 SNS를 통해 호평한 사례가 누리꾼들에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패니메이션의 열풍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올해 상반기 재패니메이션이 일으킨 돌풍은 타 재패니메이션 작품들의 성공과 투자 가능성 또한 상승시켰고 이는 국내 개봉으로 이어졌다. 특히 일본 현지에서 방영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서야 볼 수 있었던 인기 일본 애니메이션이 이제는 다양한 OTT 플랫폼을 통해 현지 방영과 동시에 시청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재패니메이션의 성장에 큰 도움을 줬다.
◇'서울의 봄', '노량: 죽음의 바다'...한국 영화 입지 지킬 반전 영화 될까 = 높은 퀄리티의 재패니메이션이 앞다퉈 개봉을 하는 지금, 한국 영화의 경우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 '노량: 죽음의 바다'(감독 김한민)이 출격을 앞두고 있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대한민국의 운명이 바뀐 서울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실제 인물인 전두환을 모티브로 삼은 인물인 전두광(황정민), 장태완을 모티브로 삼은 이태신(정우성), 노태우를 모티브로 삼은 노태건(박해준)이 등장한다는 점으로 일찍 화제를 모았다.
더불어 김한민 감독이 탄생시킨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여정인 '노량: 죽음의 바다'는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과 충무공 이순신(김윤석)의 죽음을 다룬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한국인이라면 알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어 한국 관객들이 재패니메이션보다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어필 포인트를 지니고 있다.
더불어 '서울의 봄'의 경우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에 '노량: 죽음의 바다'는 김윤석, 백윤식, 정재영, 허준호, 김성규, 안보현, 이무생,이규형, 박명훈 등이 출연하며 국내에서 내노라하는 대표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을 선보이며 올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계획이다. 여러 흥행 요소를 갖춘 한국 영화들이 올해 마지막, 재패니메이션의 공세를 꺾고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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