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무언가를 좋아하는 경험은 빛나…30년 전 '시네필'도 그랬죠"

■넷플릭스 오리지널 '노란문' 이혁래 감독

봉준호 속한 90년대 동아리 회고

봉 감독 미공개 단편도 최초 공개

지난 달 '부산시네필상' 수상도

이혁래 감독. 사진 제공=넷플릭스




“요즘에는 ‘시네필’이 욕이라면서요? 그 얘기를 했더니 봉준호 감독이 땅을 치면서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됐냐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무엇인가를 좋아했던 경험은 빛나는 것 같아요. 지금의 힘든 삶을 견뎌내는 동력이 되니까요.”

1990년대의 한국에서는 격동이 몰아치고 있었다. 권위주의를 지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문호가 개방되던 시대, 금지됐던 콘텐츠들이 물밀듯이 밀려 오고 해외 여행도 자유로워진 까닭에 사회 전체에는 개방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시네필(Cinephile·영화 애호가)들이 처음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연세대 사회학과를 다녔던 곱슬머리의 청년, 봉준호는 시네필 모임 ‘노란문 영화 연구소’에서 영화에 대한 꿈과 애정을 무럭무럭 키워가고 있었다.

지난달 2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는 1990년대 노란문에 속해있던 영화광들이 순수하게 영화를 탐구하던 그 시절을 회고한다. 30년의 긴 시간이 흐른 탓에 이들의 기억에는 오류가 있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봉준호 감독은 하나의 사건을 두고 다른 기억을 불러오는 내용의 일본의 영화 ‘라쇼몽’을 여러 번 언급할 정도다. 하지만 영화가 주는 즐거운 기억은 여전히 이들을 그때 그 시절의 청년의 모습으로 불러온다.

'노란문 영화 연구소'의 멤버들. 사진 제공=넷플릭스




영화를 연출한 이혁래 감독도 노란문에 속한 일원이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혁래 감독은 “사전 미팅을 하기 전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기다리는데 걸어오는 모습만 봐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예전 모습이 남아있는 게 신기했다”고 밝혔다.

노란문은 당시 우후죽순 생겨나던 영화 동아리였다. 일원들도 1990년대 대학교를 다니던 평범한 학생들로 이뤄졌다. 지금은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기생충(2019)’ 등 자타공인 명감독이 된 봉준호지만, 그도 일원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이혁래 감독은 “봉준호 감독이 다큐를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내가 주인공이 되면 안 되고 노란문 멤버 중 하나로 다뤄져야 한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시놉시스를 받아든 넷플릭스도 마찬가지였다. 이혁래 감독은 “넷플릭스 담당자도 ‘무언가를 좋아했던 마음을 공유하는 경험들이 영화에 담기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면서 “뜻밖이었다. 그 뒤 봉준호가 소개하는 90년대 시네필 문화처럼 구성하면 이야기가 관객에게 더 잘 전달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의 단편 영화 '화이트맨' 원고와 그의 미공개 영화 '룩킹 포 파라다이스'에 등장하는 고릴라 인형. 사진 제공=넷플릭스


영화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첫 미공개 단편 ‘룩킹 포 파라다이스(Looking for Paradise)’가 최초로 공개된다. 노란문의 멤버들은 영화를 본 첫 관객이었다. 고릴라가 천국을 찾아 떠나는 내용을 담은 단편은 서툴지만 훗날 봉준호의 작품 세계를 그대로 예견한다. 단편이 영화에 실리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실물 테이프를 찾지 못한 대신 일본에서 출시된 봉준호 감독의 초기작 DVD를 겨우 발견했지만, 시간이 지난 탓에 제대로 재생되지 못했다. 여러 가게를 돌아다닌 끝에 단편이 실린 절반만을 복구할 수 있었다.

엔딩은 노란문을 일궜던 학생들이 제각기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비춘다. 영화는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상영되며 ‘부산시네필상’을 수상했다. 당시를 살아가지 않았던 현재의 청년 관객들도 눈물을 흘리면서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을 남겼다고 했다. 지난달 28일에는 ‘노란문’의 주역들과 함께하는 ‘모여라 시네필: 세기말 영화광과 21세기 시네필의 만남’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인터뷰에서 이혁래 감독은 “지금 영화를 너무 좋아해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무언가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이 순간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