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약품으로 지정된 '리도카인' 주사액을 봉침액에 혼합해 사용한 한의사에게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의사들은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은 무면허 의료행위"라며 환영했지만, 한의사들은 이에 불복하고 항소를 예고하고 있어 양한방의 갈등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13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방법원은 한의원에서 국소마취제 리도카인 주사액을 봉침액에 혼합 사용해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에 대해 지난 10일 유죄를 선고했다.
리도카인은 의료 시술 중 통증을 없애기 위해 광범위하게 쓰이는 전문의약품이다. 국소마취 용도로 정맥 내에 직접 투여하거나 부정맥 치료를 위해 수액에 혼합해 정맥으로 천천히 투여하기도 한다. 과량 사용하거나 뇌척수 부위 등으로 잘못 투여될 경우 경련, 서맥, 저혈압 및 호흡억제가 초래되고 심한 경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치명적 약물이다. 실제 지난 2017년 3월 경기도 오산의 한의원에서 한의사가 리도카인을 투여한 후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번 사건은 전국의사총연합이 리도카인을 약침에 섞어 사용하는 한의원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경찰에 고발하면서 불거졌다. 한의사 A씨는 2021년 11월부터 2022년 1월까지 리도카인 주사액과 봉침액을 혼합해 환자 통증 부위에 주사해 의료법 위반 혐의로 벌금 800만 원의 약식명령 처분을 받았다. 검찰은 전문의약품인 리도카인 주사액과 봉침액을 혼합해 환자에게 주사한 것은 한의사 면허범위 이외의 의료행위로, 의료법 위반이라고 봤다. 그러나 A씨가 해당 처분에 불복하고 2022년 10월 정식 재판을 청구하면서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의료법 어디에도 리도카인과 같은 전문의약품을 한의사가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는 규정은 없으며, 서양의학에서 유래된 의약품 및 의약외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한의사의 사용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A씨의 주장이다.
대한한의사협회도 지난달 "해당 시술에 사용된 리도카인은 극소량이며, 약재로 마취하거나 통증을 경감시키는 것은 전통 한의학에서도 밝혀진 원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하며 거들었다.
그러나 법원은 한의사의 리도카인 사용은 의료인의 면허 이외 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의료법 제27조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료법과 약사법상 한의사의 리도카인 사용을 인정하기 어려우며, 침습적 주사제를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다. 특히 최근 한의사의 초음파 및 뇌파계 사용을 허용한 대법원 판례를 언급하며, 진단기기와 의약품은 별개의 영역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대법원 판결 이후 의사들은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은 물론 공급을 차단할 계기가 마련됐다"며 환영했다. 한의사가 한약 및 한약제제 이외에 서양의학적 입장에서 안전성·유효성 심사기준에 따라 품목허가된 일반의약품 및 전문의약품을 처방·조제하는 것은 면허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규정한 판결이라고 평가다. 이들은 "의사들만 사용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 한의원 등에 공급되는 체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며 "국민 건강권에 위협이 되고 있는 한의사들의 무면허 의료행위가 앞으로도 반복된다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반면 대한한의사협회는 반발하면서 항소 의사를 밝혔다. 한의협은 이날 성명에서 "한의사가 봉침 치료 같은 한의치료 시 환자 통증과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리도카인 등 전문의약품을 진료에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합법적인 행위”라며 유감을 표했다. 현재 한의사가 사용하는 한약(생약) 제제 중 전문의약품이 있으며, 의료법과 약사법의 전문의약품 규정에서 의약분업 대상이 아닌 한의사가 처방주체에 빠져 있다 보니 이같은 논란이 발생한 것이란 지적이다. 이어 “최상의 한의의료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여 항소심에서 최상의 결과를 얻어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항소심에서는 국민의 진료 편익성을 고려한 판결이 내려질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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