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검찰이 17일 징역 5년에 벌금 5억 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공짜 경영권 승계”라며 날을 세웠다. 이 회장 측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외형 성장과 지배구조 개선, 주주 이익까지 부합한 행위였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회장은 최후 진술을 통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서 개인 이익을 염두한 바가 없다”며 “삼성이 국민 사랑을 받는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할 기회를 달라”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지귀연·박정길 부장판사) 심리로 이날 열린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의 결심 공판에서 이 회장은 “삼성 가족, 주주,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면목이 없다”는 사죄의 말로 최후 진술을 시작했다. 이 회장은 “106차례나 거듭된 재판 과정에서 삼성에 대한 국민 기대 수준이 높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빠른 기술 혁신 속에 회사 존속·성장과 함께 국민에게 사랑받는 게 저의 목표였다”며 두 회사 합병도 같은 취지에서 이뤄졌다고 밝혔다. 특히 “지배구조 투명화가 사회 전반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으로 주주들께 피해를 입힐 생각은 맹세코 상상조차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병철 회장님이 창업하고, 이건희 회장님이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신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시켜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며 “지속적 이익 창출을 통한 일자리 창출, 소액주주 존중, 성숙한 노사 관계 정착 등 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고개를 숙였다. 10분간 이어진 최후 진술에서 이 회장은 함께 재판에 넘겨진 관계자들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는 대목에서 목이 멘 듯 목소리가 갈라지기도 했다.
검찰은 이 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과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에게는 징역 4년 6개월에 벌금 5억 원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회장 등에게 적용된 혐의는 크게 △자본시장법상 부정 거래 행위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상 거짓 공시 및 분식회계 세 가지다. 당시 경영권 승계 등을 목적으로 이 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것이다. 법원 선고 일자는 내년 1월 26일이다.
이날 결심 공판에서 양측은 첨예한 입장 차를 보였다. 검찰은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이 회장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점, 실질적 이익이 이 회장에게 귀속된 점 등을 구형 이유로 거론했다. ‘그룹 총수 승계를 위해 자본시장의 근간을 훼손한 사건으로 해당 과정에서 각종 위법된 행위가 동원된 말 그대로 ‘삼성식 반칙’의 초격차를 보여줬다’는 게 검찰 측 입장이다. 양 사 합병을 두고 삼성이 경영권 승계가 아닌 신성장 동력 확보라고 설명했으나 명분에 불과하다는 게 검찰이 내린 결론이다. 또 합병 자체가 양 사가 자체적으로 결정한 게 아니라 삼성 미래전략실에서 주도했고 6조 원이라고 밝힌 시너지 효과도 진지한 검토 없이 발표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 회장 측은 △합병 △수사 △주가 측면에서 방어 논리를 폈다. 우선 이 회장 측 변호인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외형 성장 △지배구조 △주주 이익까지 부합하는 경영상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합병이 유가 하락, 실적 악화 등 상황에 대한 타개책이었지, 검찰이 주장하는 이른바 공짜 경영 승계를 위한 게 아니었다는 논리다. 변호인들은 양 사 합병이 70% 이상 주주가 찬성해 주주총회를 통과했고 합병 직후 미수금 등 3조 원의 부실이 현실화됐다는 점, 미합병이었다면 심각한 주가 하락이 발생할 수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꼽았다. 검찰이 한쪽 측면만 고려한 수사를 했다는 점도 제기했다. 삼성물산 지분을 판 기관투자가들을 제외하고, 매수한 트러스톤자산운용만 조사했다는 게 이 회장 측이 내세운 근거다. 해외 주주 가운데서도 찬성이 아닌 합병을 반대한 곳만 조사했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이 합병 과정에서 두 회사 지분을 거래했다는 점에서 검찰이 주장하는 공짜 경영권 승계라는 표현도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회장 변호인 측은 “해당 사건은 2020년 9월 1일 기소돼 총 106회 공판에서 양측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등 3년 2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나 검찰의 주장을 보면 다시 시간을 되돌릴 듯 보인다”며 “공판 과정에서 밝혀진 사안은 제시하지 않고 기소 당시 수사 기록에 기초해 사건 판단이 내려져야 한다는 취지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는 ‘검찰 수사가 시작은 요란했으나 알맹이는 없는 게 아니냐’는 법조계 일각의 시각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검찰이 해당 사건에 대한 첫 강제수사에 착수한 건 2018년 12월 18일로 2020년 9월 1일 기소 전까지 1년 10개월 가까이 수사했다. 게다가 이 회장의 요청으로 소집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수사 중단 및 불기소를 권고했으나 검찰은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건으로서 사법적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