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해제가 임박했다는 전망에 엔·달러 환율이 장중 141엔까지 떨어지며 엔화 가치는 4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미국이 내년 상반기에는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와도 맞물려 미일 장기금리차 축소를 노린 엔 매수, 달러 매도가 가속화하는 분위기다.
경기 부양을 위해 마이너스 금리와 장단기 금리 조작(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을 고수했던 일본 중앙은행(BOJ)이 정책 수정에 나서는 모습을 보인 것은 일본 성장률이 호전되고 있는 데다 물가도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본 경제의 체질 개선이 확연히 나타나는 만큼 마이너스 금리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에 기반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계속 금리 인상을 단행해 일본과의 금리 차이가 벌어지면서 엔화를 팔고 달러를 매수하는 엔캐리 트레이드가 성행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일본 금융시장에서 해외 투자자들이 엔화를 처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7일(현지 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한때 달러당 141엔대 후반을 찍은 뒤 144엔대에서 마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이날 아침 환율이 달러당 147엔대 전반에서 출발했으나 오후 7시께 145엔으로 내려가고 8일 0시 47분 일시적으로 141엔대까지 급속히 떨어졌다. 하루 사이 최대 5엔 가까이 움직이며 환율이 흔들린 셈이다. 8일 일본 외환시장에서도 환율이 장중 142엔대로 떨어지며 엔고가 진행됐다.
이 같은 변동은 BOJ가 마이너스 금리를 곧 해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이달 7일 참의원 재정 금융위에서 “올해 연말부터 내년까지 한층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본인은 ‘일반 직무 전반에 대해 답한 것’이라고 했지만 시장은 금융정책의 변화를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전날에는 히미노 료조 BOJ 부총재도 한 간담회에서 금리 상승이 가계에 수입을 가져다줄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BOJ 내의 기류가 ‘완화 해제’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BOJ가 최근 25년간의 금융완화정책 효과와 부작용을 평가하는 워크숍을 여는가 하면 개별 금융기관에 금리 인상 대비책 등을 조사하는 등 ‘다음 한걸음’을 위한 행보를 잇따라 내디디면서 “BOJ가 정상화를 향한 사전 작업을 진행해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분위기다.
이 밖에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7일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에 대비해 BOJ가 단기 정책금리를 올릴 준비를 계속해야 한다”고 한 것도 엔화 가치 상승에 긍정적인 재료가 됐다. 여기에 미국이 내년에는 기준금리 인하에 돌입할 것이라는 기대감 역시 미일 금리차 축소를 겨냥한 엔화 매수를 부추기고 있다.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최근 약세를 보이며 4.2% 아래로 떨어진 반면 일본 국채는 이날 0.79%대까지 올랐다.
마이너스 금리 해제 시기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시점은 내년 4월이다. BOJ가 마이너스 금리 해제의 전제로 내세운 ‘임금 인상과 맞물린 물가 2% 목표’를 위해서는 아직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임금 인상이 이뤄져야 하는데 임금과 관련한 춘계노사협상(춘투)이 내년 2월 이뤄진 뒤 4월을 전후해 이를 반영한 정책 변화가 이뤄진다는 시나리오다. 블룸버그가 최근 이코노미스트 5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50%가 내년 4월을 꼽았다. 올 10월 조사 때는 29%만이 4월 해제라고 답했다.
우에노 야스나리 미즈호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4월 마이너스 금리 종료 시나리오가 최선”이라면서 정치·금융 상황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내년 1월이나 3월에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은 10월 말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금리의 변동 폭 상한 목표를 기존 0.5%에서 1.0%로 올리되 1.0%를 어느 정도 초과해도 용인하기로 한 상태다. 단기금리는 계속해서 -0.1%로 묶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국채금리도 뛰었다. 전날 일본의 10년물 국채금리는 0.101%포인트 오른 0.751%를 기록했다.
BOJ는 18~19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금리 결정에 나선다. 닛케이는 “연초부터 춘투 결과를 보고 나서 금리 인상으로 움직인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고, 이달 회의에 대한 경계는 그리 높지 않았다”며 “그러나 우에다 총재와 히미노 부총재의 발언이 더해지며 이달 회의에 대한 주목도가 더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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