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 해전은 임진왜란의 마지막이자 성웅 이순신 장군이 최후를 맞이한 전투다. “명나라를 쳐야 하니 길을 내달라”는 일본의 터무니 없는 요구로 시작된 7년 전쟁은 “싸움이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라는 이순신의 말로 끝난다.
그런데 이런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을 상업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김한민 감독은 자신의 10년 대작인 ‘이순신 3부작’을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로 훌륭히 마친 것으로 보인다.
관객수 1761만 명으로 역대 한국 박스오피스 흥행 1위인 ‘명량’(2014)은 그 대중성과는 별개로 ‘신파’ ‘국뽕’ 등의 이유로 작품성에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한산: 용의 출현’(2022)은 작품성에서는 호평을 받았지만 ‘천만 영화’ 벽을 넘지는 못하고 726만 관객에 그쳤다.
이번 ‘노량’은 그 중간점을 절묘하게 꿰뚫었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을 보는 관객들은 평생 알아왔고 머릿속에 그려왔던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자연히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서도 신파와 억지 감동은 충분히 배제했고, 고뇌하는 장군의 모습이 영화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오늘 진실로 죽음을 각오하오니, 하늘에 바라옵건대 반드시 이 적들을 섬멸하게 해 주소서”라고 말하며 전장인 노량 바다로 담담히 떠나는 장군의 모습에서는 전율까지 느낀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김윤석의 탁월함이다. 그는 김윤석은 앞서 ‘명량’과 ‘한산’에서 각각 이순신 역을 맡았던 최민식·박해일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1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월드몰에서 진행된 시사회와 언론간담회에서 김윤석은 “어떻게 이 전쟁을 올바르게 끝낼지 생각하신 노량에서의 모습을 연기하고 싶었다”며 “그 생각을 어떻게 대사로 만들지가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김윤석을 뒷받침하는 백윤식(일본 장수 시마즈 요시히로)·정재영(명나라 장수 진린)·허준호(명나라 장수 등자룡) 등의 연기 역시 빠지는 곳 없다.
이순신 장군의 최후와 함께 관객들이 가장 기대했을 부분은 대규모 전투 장면일 것이다. 장장 100분에 달하는 해상 전투 장면은 관객들의 기대치를 충족하기에 충분하다. 지축을 울리는 대포와 총소리, 침몰하는 함선들, 죽어가는 병사들을 보고 있자면 1598년 노량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다.
김한민 감독은 “이 해전을 내가 표현해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있었다”며 “단순히 스케일을 크게 한 전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순신 개인의 시선을 따라가고자 했다”고 말했다.
한국·중국·일본 삼국 병사들의 아비규환 속에서 이순신의 시선으로 촬영된 롱테이크 씬은 전쟁의 참혹함과 함께 이순신이 최후 전투를 결행한 당위성을 잘 보여준다. 전작 ‘한산’에서 호평받았던 특수효과(VFX)도 더 발달해 위화감을 느끼기 쉽지 않다.
연합한 조선·명나라 장수들 간의 갈등이나 작품 초반의 서사, 고증 문제 등에서 영화를 많이 본 관객들이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관객들이라면 의아함을 느낄 수도 있다. 다만 이 작품 관람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듯하다. 장군의 장렬한 최후를 기다리다 보면 그런 요소들은 그냥 지나치게 된다. 상영시간은 152분. 12세 관람가. 2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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