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가 자국 페소화 환율을 한 번에 54%나 평가절하하는 조치를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페소화 가치가 하루아침에 반토막난 셈이다.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취임 당시 연 130~140%에 이르는 인플레이션과 40%대 빈곤율을 타개하기 위해 예고했던 ‘충격요법’은 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루이스 카푸토 아르헨티나 경제장관은 12일(현지 시간) 저녁 금융시장이 마감한 후 TV 연설을 통해 공개한 ‘경제 비상 조치 패키지’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우선 환율 방어를 위해 페소화 고정환율을 종전 달러당 366.5페소에서 800페소로 조정한다고 밝혔다. 종전 대비 54%나 평가절하한 것으로, 시장에서 성행하는 비공식 달러(블루 달러) 환율이 1070페소임을 고려하면 두 환율 사이 격차가 상당히 줄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앞으로 페소화를 월 2%씩 평가절하한다는 목표다.
블룸버그통신은 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아르헨티나가 급진적 재정 구조조정을 통해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2.9%까지 줄일 계획”이라고 전했다. 카푸토 장관은 이날 에너지·교통 보조금 삭감, 1년 미만의 정부 근로 계약 미갱신, 새로운 공공사업 입찰 중지, 일부 세금 잠정 인상, 정부부처 절반으로 축소 등도 함께 발표했다. 수입 사전허가제(SIRA) 폐지를 통한 절차 간소화, 보편적 아동 수당 2배 인상안도 제시했다. 사회취약계층 보조금은 올해는 예산 편성에 따라 일단 유지하는 한편 340억 페소 규모의 언론사 광고비 등을 1년간 100% 삭감하기로 했다.
카푸토 장관은 “아르헨티나는 더 이상 돈이 없다”며 “이제는 재정 적자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제 비상사태'라는 급한 불을 먼저 끈 뒤 모든 수출관세 철폐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청년층과 서민의 반발이 예상되는 에너지·교통 보조금 삭감 문제와 관련 “우리 모두 보조금이 무료가 아님을 알고 있다. 마트에서 인상된 가격으로 사람들의 교통비를 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은 아르헨티나의 페소화 평가절하에 대해 환영의 뜻을 표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예바 총재는 X(옛 트위터)에서 이번 결정을 ‘결정적인 조치’로 칭하며 “국가경제의 안정성을 회복하면서 잠재력을 재건하기 위한 중요한 걸음”이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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