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검사기관인 한국선급(KR)이 특정 요구에 따라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기술 개발에 나섰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국내 유일의 선급단체인 만큼 이 같은 디지털 전환 시도는 선급(상선에 매기는 선박의 등급) 업무와 해사산업계의 혁신적인 변화를 견인할 것으로 기대된다.
KR은 선급 업무의 생산성 향상과 관련 업계의 업무 효율성 극대화를 동시에 꾀할 수 있는 디지털 선급 도약 전략을 수립 중으로, 이를 실현할 핵심 기술 개발에 한창이다.
먼저 AI를 활용한 알고리즘을 개발해 선박 검사 프로세스에 도입했다. 그간의 선박검사를 통해 축적한 빅데이터와 AI 모델을 융합한 것으로, 균열·부식·변형 등 선박 손상을 자동으로 탐지하고 판단한다. 휴대전화와 카메라 같은 영상 장비만 갖추면 구동할 수 있다. 앞으로 드론 등 스마트 모빌리티 장비와 함께 검사가 어려운 선박의 높고 좁은 구역에 적용할 계획이다. 촬영 영상의 실시간 전송과 자율 비행, 군집 운항 등의 기술이 담겨 선박검사의 정확성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기본·상세·생산 설계를 포함한 모든 설계 단계의 각 정보를 입체적인 3차원 도면으로 동기화해 통합적으로 생산·관리하는 기술도 확보하고 있다. 기술 개발이 마무리되면 복잡한 설계 도면에 대한 승인이 한 번에 이뤄질 수 있어 선박 검사의 효율성과 완성도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설계 도면 승인 단계에서 필요한 규정, 협약 등을 손쉽게 찾고 주요 점검표를 자동으로 사전에 제공하는 시스템도 조만간 구축한다. KR은 대표 기술 소프트웨어(SeaTrust-Series)에 이 같은 기술을 모두 담아 조선소의 설계 생산성뿐 아니라 이를 승인하는 KR의 생산성을 함께 끌어 올린다는 방침이다.
챗GPT 기반 앱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를 사용해 선급의 규칙, 협약, 자체 기술 기법 등을 접목한 디지털 서비스인 KR-GPT 개발에도 속도를 낸다. 기존의 국제해사협약 전산화 프로그램(KR-CON)의 검색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인공 신경망으로 구성된 언어 모델(LLM)을 접목한다는 계획으로, 내년에 출시할 예정이다. 또 선급의 다양한 규칙을 디지털화하고 챗GPT를 기반으로 검색 기능부터 판단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이는 규칙 책자를 찾아보던 PDF 파일의 단순 검색 기능이 아닌 생성형 AI 기술로 공학적인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을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KR-GPT의 개발은 마무리된 상태로, 현재 내부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질문에 대한 답변이나 원하는 규칙 내용을 찾는 기능뿐 아니라 기존의 챗GPT가 수행하던 대화형 기능도 웹과 앱 버전으로 함께 제공한다. KR은 내부 테스트를 통해 발견한 문제점을 수정·보완한 후 고객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선원 교육, 설계 협업 등 다양한 업무 프로세스에 적용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KR은 내년부터 플랫폼 기반의 디지털 서비스로 전환한다. 고객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직접 추가하거나 제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선별적으로 제공해 고객 만족도를 향상한다는 방침이다.
KR이 디지털 선급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하면 해사산업계와 동반성장이 가능한 생태계가 구축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조선·해운업계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안정적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공동연구개발을 진행해왔다. 나아가 탈탄소화·사이버보안 기술 지원, 기자재 수출·선박 탑재 인증, 조선·기자재·해양구조물 기술 규칙 주도 등을 통해 국산 기자재의 수출을 지원하며 해사산업 보호를 위한 역할을 했다.
김대헌 KR 연구본부장은 “AI 융합을 통해 생산성과 안전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유능한 개발인력 확보는 물론 AI를 선급 업무에 빠르게 내재화함으로써 치열한 선급 간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겠다”며 “해사산업계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안정적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산업계와 함께 공동연구개발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산 강서구에 위치한 KR은 바다에서의 인명과 재산의 안전은 물론 해양환경을 보호하며 해사산업 발전과 조선·해운·해양에 관한 기술진흥을 목적으로 1960년에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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