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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리포트]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것 ‘사랑은 낙엽을 타고’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가져갔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안사(알마 포이스티)와 자꾸만 술을 마시고 건설 현장에 와 해고당한 홀라파(유시 바타넨)의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사진 제공=MUBI




2023년을 보내며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로 ‘폴른 리브스’(사랑은 낙엽을 타고)를 꼽는다. 핀란드 출신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이 자신의 영화 미학을 담은, 툭툭 던진 유머가 한참을 곱씹게 만드는 76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이다. 아키 감독은 헬싱키를 배경으로 외로운 영혼 안사(앨마 포이스티)와 홀라파(유시 바타넨)의 달콤 씁쓸한 사랑을 81분짜리 영화에 담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라디오 해설로 기록해 영원히 역사에 남겼다. 홀라파는 핀란드 대표작가 마르코 타피오의 ‘아티넨 히스테리아’를 읽다가 잠드는 알코올 중독자다. 시작되는 사랑을 하면서 짐 자무시의 ‘데드 돈 다이’(2019)를 골라 극장에서 함께 보는 안사는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다.

좀비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며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1)를 비교하고 고다르 영화 ‘국외자들’(1964)을 운운하는 대화가 일상인 핀란드 문화에 동경심이 일어 헬싱키에서 사는 백일몽을 꾸었다. 물론 칸 영화제 기자회견 중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에게 “온전한 정신이라면 핀란드에 가지 말라. 관광을 떠나도 최대 2박까지만 머물러야 한다. 영화처럼 로맨틱하지 않다”는 농담 같은 진심을 듣고 곧장 현실로 돌아왔다.

유시 바타넨(오른쪽부터)과 알마 포이스티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왼쪽부터)과의 작업이 대부분 원테이크로 끝난 것이 묘미라고 말한다. 사진 제공=MUBI


아키 감독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부당한 공격인 전쟁”이라고 언급하며 “전쟁을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영화는 영원히 지속된다. 사람들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볼 것이고, 원칙적으로 영화는 계속 살아남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사랑이 필요하다.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사랑. 이것이 오늘날 가장 중요한 주제”라며 사랑과 영화의 힘을 역설했다.

아키 감독은 “사소한 이야기로 러브스토리를 만들 수 있을까 골몰했다. 영화에서 두 사람은 거의 만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는 둘의 만남이 극히 적다. 술에 취해 정신을 못차리고 기차에 부딪혀 끌려가면서 두 사람은 자꾸 어긋난다”며 그 둘을 결코 만나게 하지 않는 것이 원래 의도였다고 말했다.



여주인공 안사의 이름에는 ‘덫’이라는 의미가 있다. 극장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헤어지면서 안사는 수첩 한 장을 찢어 이름 대신 전화번호를 홀라파에게 건넨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안사만 쳐다보던 홀라파는 쪽지를 받지만 술에 취해 잃어버리고 만다. 둘의 표정이 하도 무미건조해서 과연 사랑에 빠진 걸까 싶은데 극장에 걸린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밀회’ 포스터가 이들의 심리를 묘사해준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유기견 이름을 부르는 엔딩 컷으로 채플린 영화를 오마주한다. 감독은 포르투갈 브라가의 길거리에서 데려와 키운 자신의 개를 영화에 출연시켰다. 사진 제공=MUBI


'폴른 리브스'는 1983년부터 아키 감독과 함께 해온 스탭들이 대화가 아닌 눈빛으로 탄생시킨 오마주가 많은 작품이다. 아키 감독은 "이 멜랑콜리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가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시나리오를 쓰는데 정확히 5일 걸렸다. 잠재의식 속에서 30시간 만에 써서 형편없는(?) 영화”라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득한 레퍼런스(참고문헌)를 찾으며 실소했다. 아키 감독과 미니멀리즘 스타일을 창조해낸 티모 살미넨 촬영감독이 1999년 영화 ‘유하’에 100편이 넘는 레퍼런스가 포함돼있다고 했던가.

사랑의 대상을 찾고 인기 있는 문학작품을 읽으며 사랑받는 영화와 음악에 빠져 사는 핀란드인의 자부심이 보인다. 침묵이 재밌다고 표현할 만큼 말수가 적어 차가운 듯 보이지만 마음만큼은 따뜻한 그들이 대화를 걸어온다.

영화 ‘폴른 리브스’는 아키 감독이 사랑한 동시대 사람들에게 바치는 애정 어린 헌사이자 극장의 힘을 시의적절하게 상기시켜주는 거장의 시네마 레터이다./하은선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골든글로브협회(GGA)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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