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30조 원 규모인 ‘폴란드 방산 수출 2차 이행 계약’이 우리 측의 수출금융 지원 문제로 갈림길에 선 가운데 대안으로 폴란드 국채 매입 방식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보증을 서는 전제 하에 국내 시중은행들이 폴란드 국채를 매입해 수출금융 지원 문제로 교착 상태에 빠진 2차 이행 계약을 상반기 중 조속히 마무리하는 방안이다.
3일 국방부와 방산 업계에 따르면 국내 시중은행들이 폴란드 국채를 매입하거나 폴란드 정부에 추가 대출(신디케이트론)을 해주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최근 폴란드의 신임 총리가 “한국의 융자금(제공)이 없다”고 밝혀 촉발된 2차 이행 계약 불발 우려를 신속히 잠재우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현재 우리 정부는 폴란드와 2022년 체결했던 기본 협정에 따른 2차 이행 계약 잔여분에 대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특히 2차 이행 계약 시한은 올해 6월까지라는 점에서 상반기 중에 반드시 계약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군 관계자는 “2차 이행 계약에 대한 차관(금융 지원)이 지연돼 폴란드 새 정부가 오해하는 부분이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내 시중은행들을 통한 폴란드 국채 매입 등 추가적인 금융 지원을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폴란드와의 방산 수출 1차 이행 계약 금액인 124억 달러(약 17조 원) 중 약 100억 달러를 정부의 해외 차관 및 수출입은행을 통한 신용공여 방식으로 제공했다. 문제는 폴란드가 2차 이행 계약 금액(약 30조 원)에 대해서도 1차 계약 때와 같이 약 80%대의 금융 지원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반면 우리 측 수출입은행은 이미 1차 사업에서 6조 원가량의 신용공여를 제공하며 한도를 대부분 소진해 추가 금융 지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행법상 수출입은행은 특정 대출자(대기업집단)에 대해 자기자본(15조 원)의 40%(6조 원) 이상을 대출할 수 없다.
정부는 해결책으로 국내 시중은행을 통한 우회 지원으로 급한 불을 끄는 카드를 추진했다. 이에 따라 국내 시중은행들이 지난해 11월 3조 원대 공동 대출(신디케이트론)을 통해 계약 중 시급한 물량을 지원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상반기 2차 이행 계약 시한이 도래하자 당국은 시중은행과 추가적인 협력을 통해 수출 활로를 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 계약에 참여하는 국내 시중은행들도 이후 단계적으로 추가 지원을 통해 총 10조 원을 지원하는 데 동의한 상태다. 복수의 금융사가 공통의 조건으로 자금을 대여하는 신디케이트론의 특성상 은행들의 대출 부담금은 균등하게 나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현재 하나은행 주도로 대출금리 조건, 정부 보증 여부 등에 대한 세부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며 “정부가 높은 금리에 부담을 느끼는 폴란드를 고려해 추가 지원 시 폴란드 국채 매입을 통해 대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정부 당국자도 “2차 계약의 대출 부분은 폴란드가 요구한 조건을 맞춰야 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며 “폴란드가 유럽 등 해외에서 추가로 돈을 빌리거나 국내 시중은행이 추가 대출과 국채 매입을 통해 지원하는 방법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폴란드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 등 한국 방산 업체로부터 K2 전차 1000대, K9 자주포 672문, 천무 288문 등을 구매하겠다는 기본 협정을 체결했다. 같은 해 8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 군비청과 K9 212문, 11월 천무 218대를 수출하는 1차 계약을 맺었다. 현대로템은 1차 계약에서 폴란드와 K2 전차 180대 수출을 확정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K9의 남은 계약 물량(460문) 중 일부인 152문에 대한 2차 계약이 체결됐다. 규모는 약 26억 달러(3조 5000억 원)이다. 이에 따라 우리 방산 업체의 남은 계약 물량은 K2 전차 2차 계약분(820대)과 K9 자주포 잔여 물량(308문)이다.
폴란드 새 연립정부의 도날트 투스크 총리가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에서 “한국(과의 무기) 구매에 문제가 있었다”며 “한국의 융자금(제공)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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