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살인범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수개월 참전한 대가로 사면을 받아 지역사회에 복귀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에 피해자 유가족 및 주민들의 분노와 공포심이 커지고 있지만, 러시아 정부는 전과자들이 전장에서 복무하며 속죄를 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현지시간) 참전 살인범의 사면에 고통받고 있는 러시아 피해자들의 사연을 보도했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병력을 늘리기 위해 교도소에서도 사면을 대가로 병사를 모집했다. 강제 동원령에 징집된 일반 병사들이 기약 없이 전장에 남아 있는 것과 달리, 전과자들은 대부분 '자원 봉사' 형태로 6개월 계약을 맺고 국방부가 지원하는 용병그룹에 합류해 전쟁을 치렀다. 시간이 흐르며 사면을 받은 전과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현지 언론과 주민들의 전언이다.
러시아 중부 칼루가에 사는 안나 볼티뉴크는 2014년 자신의 딸을 강간하고 살해한 예브게니 타타린체프가 사면됐다는 소식을 최근 가까스로 접했다. 그는 아직 3년밖에 형기를 치르지 않았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는 이유로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볼티뉴크는 "내가 딸의 무덤에 갈 때 그는 친구들과 바비큐를 먹으러 갈 것"이라며 분노했다.
시베리아 베르스크에서는 지난달 주민들이 택시 호출 어플을 이용하다가 살인 전과가 있는 남성이 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도 있었다. 그는 2019년 한 여성을 살해하고 차를 훔친 혐의로 복역하다가 지난해 용병단 바그너 그룹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서부 야로슬라블 출신의 니콜라이 오골로뱌크는 악마숭배 의식을 하며 10대 청소년 4명을 살해해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전장에서 불과 3개월을 보낸 후 부상을 입고 사면됐다. 그가 11월 고향에 돌아오면서 가족에게 자동차를 선물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경악했다.
사면된 전과자 중 일부는 벌써부터 강력범죄를 다시 저지르고 있다고 한다. 알레나 포포바 인권 변호사는 보복이 두려워 해외로 떠나는 피해자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처럼 주민들의 공포와 분노가 커지고 있지만 러시아 정부는 참전 전과자 사면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지난해 11월 "중범죄자를 포함한 죄수들은 전장에서 피로 범죄에 대해 속죄하고 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당국은 사면 사실을 확인해주는 데도 소극적이다. FT는 "피해자들과 지역 주민들은 소문으로 사면 소식을 전해 듣거나, 가해자들의 보상금 지급이 끊겨 사면됐음을 알게 된다"고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