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광산 산업이 저문 영국 북동부 더럼 주의 한 마을. 이곳은 학교도 교회도 떠나간 지 오래다. 황폐해진 마을에 시리아 난민이 둥지를 튼다. 영국 정부는 값이 싸고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곳에 난민을 수용하고 싶어 했고, 마침 폐광촌이 적합한 선택지로 떠올랐다. 하루아침에 낯선 이들과 함께 하게 된 마을 주민들은 “우리 마을은 쓰레기장”이라고 자조하면서 이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외양도 문화도 다른 두 공동체는 다시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영국의 거장 켄 로치의 신작 ‘나의 올드 오크’는 쇠락한 영국 북동부를 주제로 불평등한 현실을 그려낸 이른바 ‘영국 북동부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영국 북동부에는 수많은 폐광촌이 있다. 한때는 번성했으나, 1984년 마거릿 대처가 대규모 파업을 진압한 데 이어 산업마저 격변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된 장소들이다. 사람들이 모일 공공장소조차 없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남은 공간은 ‘TJ’가 운영하는 술집 ‘디 올드 오크’다.
TJ는 선량하지만 소시민적인 인물이다. 시리아 난민이자 사진 작가를 꿈꾸는 소녀 ‘야라’의 카메라가 부서지자 도움을 주지만, 카메라를 망가뜨린 범인을 찾고 싶다는 그의 부탁에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다.
‘디 올드 오크’를 둘러싼 이해관계도 첨예하다. 주민들은 술집을 마지막 남은 보루라고 여기고 이를 난민에게 내어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TJ는 음식을 통해 야라와 우정을 쌓으며 점차 이방인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네 편을 정하라”라는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디 올드 오크’의 존속은 불확실해진다.
영화는 실제 북동부에 살고 있는 이들을 캐스팅하며 사실감을 높였다. TJ를 맡은 데이브 터너는 더럼 주의 소방관으로, ‘나, 다니엘 블레이크’ 출연을 계기로 이번 작품에서는 직접 주인공을 맡았다. 영화 속 시리아 난민도 실제 지역에 정착한 시리아 가족들을 캐스팅했다. 야라 역의 에블라 마리도 시리아 출신 배우다.
리얼리즘을 통해 사회를 성찰해 온 켄 로치의 카메라는 단순한 선악의 잣대로 현실을 예단하지 않는다. 집과 가족을 잃은 난민의 고통과 제대로 된 사회 복지도 없이 난민을 마주하게 된 주민들의 목소리를 고루 영화에 담았다. 그러나 켄 로치는 TJ의 말을 빌어 “어려움 속에서 약자를 비난하는 선택은 가장 손쉬운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TJ와 야라가 함께 들어 올린 ‘용기·연대·저항’이라는 광부들의 표어처럼, 서로 애도하고 기뻐하면서 나눈 온기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형성해낼 수 있다. 이번 작품이 마지막 장편 영화가 될 것이라고 밝힌 87세의 노장에게 희망은 여전히 반짝이는 보석이다. 제76회 프랑스 칸 영화제 경쟁 초청작. 오는 17일 개봉. 1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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