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정부와 의사들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늘리면 의사들이 현재보다 필수의료 분야에 더 많이 지원할 것으로 기대한다. 지역사회 주민들이 더 편안하게 의료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지역의사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반면 의사들은 일방적인 의대 정원 증원만으로 필수의료 분야와 지역사회 의료기관의 의사 부족 문제나 소아청소년과의 오픈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진실은 무엇일까? 무엇을 해결해야 정부도, 의사도 합의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까? 현직에 있는 외과의사로서 무엇보다 국민을 최우선에 놓고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안해 본다.
가장 필요한 조치는 상대가치 점수 제도의 개혁이다. 상대가치제도란 정해진 분량의 식사를 정해진 인원이 나눠 먹도록 규정해 놓은 ‘배분 기준’이다. 그런데 기준이 처음 설정될 때부터 잘못된 채 20년째 유지돼 왔다. 특히 외과 수술 분야의 상대가치는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의료계가 ‘저수가’라고 주장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비전문가들이 상대가치의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예를 들어보자. 중고등학생 100명이 식사를 해야 하는데 ‘싸우지 말고 공평하게 나눠 먹으라’고 이야기하며 70인분만 제공하는 격이다. 한 끼 정도는 다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마다 식성도, 식사량도 다른 학생들에게 오랜 시간 이 상태를 강요하면 불만이 누적되고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운동량이 많은 남학생들은 많이 먹어야 하고, 상대적으로 활동량이 적은 여학생들은 소량을 천천히 먹어야 불만이 줄어들 것이다. 이같은 개별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누구든 정해진 식사량만 먹으라고 하거나 소량을 여러 번, 빨리, 혹은 많이 먹는 것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내부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 자명하다.
애시당초 제공되는 식사량이 적정량에 턱없이 미치지 못했고 배분에 대한 내부 규정이 처음부터 잘못됐다는 얘기다. 심지어 내부에서 조율하도록 강제할 장치도 없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외부에서라도 식량을 추가하거나 조율이 필요하다. 그러나 적은 배급량을 분배하려면 다수의 원망을 살 수 있기에 외부에서도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상대가치 점수는 진료과가 다른 의사들로 하여금 생활여건 또는 수익의 측면에서 심한 불균형을 초래했다. 소위 필수의료 분야로 지칭되는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신경외과의 경우 심각함이 정도를 넘어섰다. 필수의료 분야는 진료의 특성상 진료와 수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수술을 예를 들면 수술 전 준비부터 마취, 본 수술, 회복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집중적으로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과 의사의 행위에 대한 가치는 지나치게 낮게 책정해 놓았다.
수가가 낮게 책정된 원인은 의료보험이 도입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외과계 의사들은 수술실에서 환자를 수술하느라 바빴기에 보험체계나 급여 기준에 대해 인식이 부족했다. 여기에 ‘외과 의사가 수술실에서 보낸 시간’만을 의료행위의 가치를 산정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출발부터 잘못된 상대가치 제도는 3분 진료가 성행하고 중증 환자를 치료하거나 연구, 교육에 전념해야 할 대학병원들이 일선 병의원들과 마찬가지로 박리다매형 진료를 하게 된 이유다.
다르게 설명하면 감기나 피부질환, 단순 배탈 같은 경증 질환이 발생한 경우와 골절, 분만, 위암 수술 등 외과 의사가 수술을 하는 의료비가 유사하다. 흔히 맹장수술이라고 불리는 단순 충수절제술의 연 시행건수는 8만 1000건, 상대가치 점수를 토대로 산정한 행위료는 7만 5000원이다. 진찰료의 경우 별도 상대가치 점수가 매겨지지 않았으나 연간 5억 건의 원외처방이 이뤄지며 초진 기준 1만 7000원으로 산정됐다. 경증 질환은 중증 질환보다 훨씬 자주 발생한다. 진찰료를 인상하면 경증 질환의 의료이용을 늘리고 중증 질환의 의료이용이나 서비스의 질을 개선할 수 없다. 진찰료 인상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부추길 뿐이다.
국민들이 흔히 가까운 병의원을 찾는 고혈압, 감기는 3분 안에도 진료가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위암 수술, 심장 수술, 제왕절개 수술은 결코 3분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젊고 현명한 전공의들은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필수의료 분야에서 도망치려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데다 의료소송에 시달릴 위험이 높은 진료과 대신 편하고 돈벌이가 쉬운 진료과를 선택하는 젊은 의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상대가치 점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미용, 성형 분야로 진출하거나 전문의가 되기 위해 대학병원에서 거쳐야 하는 3~4년의 수련과정을 생략하기도 한다. 겉보기에만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현행 상대가치 점수 제도를 유지한 채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정책 당국자들이 원하는 효과는 결코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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