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 발레단에서 사랑도, 커리어도 쟁취하며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엘리즈’. 그러나 그는 공연 전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다. 발레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그는 막막한 심경에 놓인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엘리즈는 새롭게 찾은 즐거움을 향해 몸을 내던진다.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2018)’ ‘썸원 썸웨어(2020)’ 등을 통해 프랑스의 낭만적인 전경을 스크린에 옮겨 온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이 신작 ‘라이즈(En Corps)’를 통해 돌아왔다. 영화는 춤을 통해 인생을 바라본다. 발레는 고전적인 문법에 따라 절제된 미학을 선보여야 하는 장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발레가 ‘하늘 속에 있다’는 비유를 든다. 발레리나는 항상 하늘로의 비상을 꿈꾼다. 움직이는 엘리즈의 모습이 미분화된 오프닝 시퀀스는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수천, 수만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한 그의 일생을 요약한다.
반면 발레리나에게 추락은 위기다. 사고 이후 발레를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엘리즈는 “나는 26살이고, 지금 당장 춤을 춰야 한다”고 항변한다. 그의 절망은 누구나 한번쯤 겪어본 인생의 실패를 곱씹게 한다. 치열하게 흘린 땀과 눈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삶을 살아가야 한다.
발레가 하늘이라면 현대무용은 땅이다. 땅처럼 거칠고 실제 삶과 가깝다. 기분 전환차 시골로 여행에 나선 엘리즈는 안무가 호페쉬 쉑터를 만나면서 현대무용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쉑터는 다시 춤을 추기를 머뭇거리는 엘리즈에게 “약한 건 새로운 초능력이 될 수 있다”는 위로를 건넨다. 예술의 진정성은 위기를 직시할 때 비로소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즈는 다시금 춤의 즐거움을 깨닫고 현대무용단에 들어간다. 현대무용을 펼치는 엘리즈의 무대는 발레에 비해 단순하다. 하지만 그 속에 응축된 엘리즈의 시간을 읽어낸 순간부터 감동은 배가 되어 관객에게 돌아온다. 시행착오에도 새로운 도전을 내딛는 청춘의 시간은 공고하고 아름답다.
엘리즈를 맡은 배우 마리옹 바르보는 파리 오페라발레단 수석 무용수 출신으로, 발레부터 현대무용까지 다양한 안무를 정확하게 소화한다. 데뷔작이지만 섬세한 호연에 힘입어 그는 올해 예정된 뤼미에르영화제·세자르영화제 신인여우상 후보에 올랐다. 실제로도 세계적인 안무가인 호페쉬 쉑터의 독창적인 안무도 볼거리를 선사한다. 오는 17일 개봉. 1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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