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이후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기소 여부를 판단하지 못했다는 게 참담합니다.”
한낮에도 영하의 날씨를 기록한 15일 오후 1시께. 보라색 목도리를 맨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십여 명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 모여 김광호 서울청장과 최성범 용산서방서장의 기소를 촉구하고 나섰다. 대검찰청은 이날 오후 2시께 김 청장과 최 서장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한 공소 제기 여부를 안건으로 하는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 현안위원회를 열었다.
유가족 측은 이날 이태원 참사의 책임자로 지목된 이들에 대한 기소를 강력히 촉구하는 한편 수심위 개최 자체를 비판하고 나섰다. 유가족 법률대리를 맡고 있는 윤복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10.29 이태원 참사 대응 TF 단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수심위가 김광호 청장을 불기소하기 위한 형식적 절차이고, 그렇다면 유가족을 모시고 그 자리에 참석하는게 불기소 과정의 들러리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많은 고심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특수본의 두달 간의 수사 결과 김광호 청장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음에도 검찰은 1년 가까이 뭉그적 거리고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참여해서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 외에 다른 수단이 없기에, 절박하고 간절한 유가족들의 마음을 담아서 수심위 위원들께 설득하고 호소하고자 여기 왔다”고 덧붙였다.
수심위는 외부 전문가 위원들에게 검찰이 수사 결과를 설명한 뒤 안건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절차로 진행된다. 150∼300명의 외부 전문가 위원 중 무작위 15명으로 현안위원회를 구성해 심의한다.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사건의 수사 과정을 심의하는 기구로 지난 2018년 1월 대검찰청에 설치됐다.
윤 변호사는 또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과 분노만으로 기소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며 “다시는 이 땅에 이태원 참사와 같은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을 규명하여 고위직 공무원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자신의 책무를 다하게 하고자 함이다”라고 강조했다.
유가족들도 이날 책임자 처벌에 대해 강력히 주장했다.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협) 운영위원장은 “수심위 개최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검찰이 왜 기소 여부를 외부에 묻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어 “김 청장은 참사를 막을 수 있는 핵심 인물이었다”며 “수심위 결과가 어떻든 김 청장의 책임을 묻는 데 끝까지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청장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2022년 10월 29일 당시 이태원 일대에 인파가 몰릴 것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도 안전관리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받는다. 최 서장은 참사 발생 이후 구조 지휘를 소홀히 해 인명피해를 키운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김 청장 등을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서부지검은 1년이 넘도록 아직 기소 여부를 정하지 않았다.
유가족 측 변호사 5명과 이정민 유가협 운영위원장이 참여한 수심위 결과는 이날 오후 늦게 나올 전망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