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록히드사 ‘F-117’ 나이트호크(Lockheed F-117 Nighthawk)는 록히드 해브 블루 스텔스 시제기 계획을 이어받아 스텔스 기술을 기체 전체에 적용해 록히드 사가 설계·개발했다. 세계 최초로 실전 배치된 스텔스 공격기다. 1991년 걸프전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미군이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의 지대공 미사일에 큰 피해를 본 사례나 제4차 중동전에서 소련의 신형 지대공 미사일에 이스라엘 공군이 겪었던 피해 등처럼 스텔스 공격기 개발에 중요성이 부각됐다. 미 국방부는 국방고등연구계획국을 통해 록히드 사와 노스롭 사에 스텔스 공격기 개발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처음 만들어진 시제기 ’해브 블루’는 1977년 12월에 최초 비행에 성공했지만 사고로 손실됐다.
이후 이 시제기를 바탕으로 공격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내부무장과 센서를 탑재하고 기체를 확대한 F-117은 기종이 탄생했왔다. 미군 당국은 외부 언론에 노출하지 않고 존재를 숨겨오다 1988년에 F-117 사진 한 장을 공개하며 공식적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F-117A의 완벽한 임무 수행 첫 기록은 파나마에 투입된 것이다. 토노파기지를 이륙한 6대가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파나마의 수도 파나마시티와 중부에 있는 리오 하트 지역 보병 부대 막사를 F-117A 2대가 공격했다. 레이더에 파지되지 않고 접근한 F-117은 각각 1발씩 2000파운드 폭탄을 막사와 가까운 거리에 명중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당시 악천후와 통신 착오로 완벽하지 않았으나 스텔스기에 의한 기습공격의 성공적 사례다.
기습공격 최선봉은 스텔스 공격기 ‘F-117’
이라크 전쟁에서도 F-117은 그 성능을 증명했다. 미국을 필두고 하는 다국적군이 대 이라크전의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다국적군 F-117이 포함된 것을 알고 있는 이라크는 충분한 대비했고, 미군은 파나마 경우 처럼 완전한 기습이 힘들 것이라는 판단과 달리 이라크군의 방공시스템은 F-117를 전혀 탐지하지 못했다. 바그다드에 있는 대통령 관저와 바트당 본부, 이라크군사령부, 이라크 및 쿠웨이트의 지휘 통신 시설은 기습공격에 의해 처참하게 당했다.
카마스무샤이드 기지를 출격한 F-117 36대는 저고도로 침입해 공격하고 고고도로 귀환하는 작전을 펼쳤다. F-117이 바그다드 상공에 도착했을 때 등화관제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F-117 기수에 장비된 센서로 목표 건물로 조준해 레이저 유도폭탄을 목표에 명중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 같은 전과를 올린 덕분에 이라크군은 효과적인 반격도 못한채 정전에 응하면서 전쟁은 마무리됐다. 전사 전문가들은 F-117 스텔기 공격기를 활용한 개전 첫날 공습이 없었다면 다목적군은 절대적인 항공 우세를 확보하지 못해 전쟁이 장기화 됐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라크군이 대응 준비를 갖춘 상태에서도 기습 공격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F-117이 채택하고 있는 스텔스라는 기술 덕분이고 전쟁 승리의 결정적 주역일 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A-10 선더볼트 공격기는 1960년대 중반에 미 공군이 베트남전 근접항공지원임무에 F-4, F-105 등의 전투기를 투입했으나 근접항공지원에 부적하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새로운 대체 기종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았다. F-4. F-105 등은 고속의 대형기종으로 무장탑재능력이 우수하지만 체공 능력이나 저고도 기동성 등이 떨어진다. 따라서 전장 상공에서 체공을 오래하고 다양한 무장탑재능력, 저고동 기능성이 높은 근접항공지원임무 충족할 새로운 항공기 개발을 위해 미국은 1966년에 근접항공지원 전용 공격기 개발계획에 들어갔다.
신형 공격기의 요구 조건으로 전투 효율성과 생존성 등이 제시됐다. 특히 야전 비행장에서 운용할 수 있도록 비행 및 정비유지에 신뢰성이 높아야 하고, 대량무장으로 장시간 체공이 가능하는 것은 물론 고동의 기성을 갖춰 기존의 B-57 폭격기, A-37 및 A-1 공격기 등을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됐다. 이를 맞춘 것이 A-10 공격기다.
A-10, 출격 1회로 최소 16대 전차 파괴
우선 느린 고아음속 영역에서 성능이 우수한 터보팬 엔진을 사용했지만 최대 속도는 떨어진다. 그래도 효율이 높고, 소음이 적고, 어느 전폭기 보다 우수한 전투 지속 능력과 제공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저공비행으로 피탄될 경우를 대비해 조종실 주위와 밑부분을 티타늄을 적용해 23mm 기관포 직격탄에 맞아도 조종사를 보호할 수 있게 장갑화했다는 특징이 있다.
A-10은 항공기 탑재 기관포 중에서 가장 강력한 화력의 GAU-8 30mm 기관포를 장착하고 있다. 또 기관포 탑재를 위해 바퀴를 기수 오른쪽으로 배치해 다른 항공기에도 볼 수 없는 A-10만의 독특한 설계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저고도 아음속 영역에서 우수한 선회 성능을 자랑하고, 야전 비행장에서도 이착률할 수 있는 우수한 단거리 이착륙 성능도 과시한다. 1회 출격으로 최소 16대 이상의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기갑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A-10은 현대 전장에 맞지 않다는 비판 속에서도 걸프전에서 그 진가를 다시 발휘하면서 여전히 뛰어난 공격기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최근 A-10은 F-35의 배치로 서서히 퇴역이 진행되고 있지만 F-35가 A-10의 공백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근접지원기의 명기로 꼽히는 A-10의 빈자리를 한 동안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에 대적할 공격기는 러시아의 Su-25. 미국의 A-10에 해당하는 지상군 근접항공지원기다. 첫 비행은 1972년 성공한 A-10 보다 3년 늦은 1975년이다.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맹활약하며 유명해졌다. 당시 미국이 제공한 스팅거 견착식 지대공 미사일에 Su-25가 피탄되기도 했지만 무사히 기지로 귀환한 사례는 생존성 높은 공격기라는 평가를 이끌어 냈다.
Su-25는 가장 흔한 항공역학적 구조로 이뤄졌다. 주익이 고익에 단순한 사다리꼴이라 실속 가능성이 적고 한쪽에만 5개의 하드포인트가 있어 많은 무장을 장착하는 게 가능하다. 세미 모노코크 골격에 응력 외피로 제작된 타원형 동체는 주익과 일체식이다. 공교롭게도 이런 모습은 미국의 A-X 사업에서 A-10과 경쟁을 벌였던 YA-9 상당히 유사해서 한때 모방이나 기술 유출 등이 거론됐다.
저고도에서 저속으로 작전을 펼쳐야 하므로 기체를 방탄 능력이 뛰어난 티타늄 합금으로 설계됐다. 특히 조종석 부분은 20mm 기관포나 30mm 고폭탄의 공격을 견뎌낼 정도의 뛰어난 내탄성을 지녔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맨패드의 공격으로 어려움을 겪자 피격 시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방어력 향상이 이뤄졌다.
피탄에도 무사 귀환한 생존성 높은 ‘Su-25’
소형이지만 강력한 2기의 R-195 터보팬 엔진(후기형) 덕분에 강력한 무장을 탑재하고 작전을 펼칠 수도 있다. 등유뿐만 아니라 유사시 가솔린이나 경유도 연료로 사용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Su-25뿐만 아니라 거친 야전에서 운용 효율을 높이기 위한 소련제 무기의 흔한 특징 중 하나로 꼽힌다. DISS-7 도플러 레이더가 기수에 장착되어 야간이나 악천후에도 비행이 가능하고 지상 목표물 공격을 위한 다양한 센서가 장비돼 있다.
1978년부터 지금까지 약 1000기 이상 만들어져 개량을 거치면서 계속 생산되고 있다. 미국만 사용한 A-10과 달리 해외에 공급도 많이 이루어져 옛 소련에 속했던 국가들을 제외하고도 20여 개국에서 사용했거나 사용 중이다. 북한도 30여 기를 운용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개량형으로는 Su-25K(Su-25 수출형) Su-25UB(복좌 훈련기), Su-25UBM(공격기 겸용 복좌 훈련기), Su-25UTG(함재기 요원 양성용 훈련기), Su-25BM(훈련용 표적기), Su-25T(대전차전 전용기), Su-25SM(Su-25 현대화 개량형-GLONASS 항법장비를 장착GO 정밀타격능력을 갖췄다), Su-28(Su-25UB 기반 고등훈련기-UB형에서 항전장비와 무장능력을 제거한 다운그레이드 형) 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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