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잘 자나?”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요즘 자도 자도 피곤하다며 좋은 영양제를 추천해 달라는 K에게 한 친구가 이런 질문을 던지더군요. 자고 일어났는 데도 졸리다고 하소연하기 전에 ‘제대로 잘 자고 있는 건지’ 점검해 보라는 조언이었습니다. 본인은 수면 위생을 위해 커피는 물론 홍차, 녹차, 콜라 등 카페인이 함유된 음료를 오후 2시 이후에 일절 입에 대지 않고,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절대 만지지 않는다고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만성피로라는 표현을 달고 사는 저로서도 한 번쯤 수면 습관을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수면의 질과 양에 관련된 문제로 발생하는 장애를 불면증(insomnia)이라고 부릅니다. 성인 인구의 33~55%가 경험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흔한 질환이죠. 단순히 잠들기 어려운 현상을 넘어 일찍 깨어나거나 그로 인해 낮시간대 활동에 지장을 주는 증상을 가리키는데 통상 수면장애가 3개월 이상 지속될 때 만성 불면증으로 분류합니다. 원인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자세한 문진과 수면 관련 설문지, 환자가 작성한 수면일기 등을 통해 정신과적 혹은 내과적 질환의 동반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 가장 먼저 이뤄집니다. 동반질환이 확인되면 임상의가 어떤 상태를 먼저 치료할 것인지 혹은 동시에 치료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되죠.
불면증 치료는 크게 약물요법과 비약물요법의 2가지로 나뉩니다. 불면증으로 진단되더라도 수면제 처방에 앞서 인지행동치료(CBT·Cognitive Behavior Therapy)를 우선 시도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CBT는 올바른 수면 패턴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인식과 행동을 교정하는 방식으로 약 4~8회에 걸쳐 위생교육·수면제한·자극조절·이완요법 등 여러 요소를 접목한 치료가 진행됩니다. 수면제한요법은 기상시간으로부터 수면시간을 역으로 계산해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방법인데요. 가령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하는 사람이 최소 6시간은 자야 겠다고 목표를 정했다면 아예 새벽 1시에 눕는 거죠. 잠에 대한 강박이 너무 심한 사람에게서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불면증 치료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만성 불면증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치료기기가 정식으로 처방되기 시작했거든요. 에임메드가 서울대병원·삼성서울병원·고대안암병원과 함께 개발해 작년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국내 1호 디지털 치료기기로 승인 받은 ‘솜즈(Somzz)’입니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의학적 장애나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치료적 개입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로 흔히 ‘디지털치료제’(Digital Therapeutics)라고도 불립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을 통해 이용되는 인터넷 기반의 서비스인데 의학적 근거를 토대로 규제 기관의 허가를 받고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기존 헬스케어 앱들과 차이가 납니다. 별도 처방전 없이 인터넷 쇼핑몰이나 드럭스토어에서 구매 가능한 건강기능식품과 전문의약품의 차이 정도로 비유할 수 있겠네요.
솜즈는 만성 불면증의 표준치료법인 CBT를 모바일 앱으로 구현했습니다. 솜즈 처방을 받는 환자는 6~9주간 병원에 직접 가는 대신 매일 앱에 수면일기를 기록하면서 의사로부터 주 단위로 자신에게 맞는 수면시간(잠자리에 누워있는 시간)을 처방받습니다. 그 밖의 행동 중재나 수면습관 교육, 피드백도 제공되죠. 이달 초 서울대병원에서 첫 처방이 나왔고 행정절차를 거쳐 삼성서울병원·고대안암병원·세브란스병원·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등으로 처방 가능한 기관이 늘어날 전망입니다. 전문가들은 병원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매일 모니터링이 필요한 불면증 환자의 잘못된 수면 습관을 개선하는 데 유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소득 없이 매일 밤 양을 한 마리, 두 마리 세어가며 억지로 잠을 청하는 분이 있다면 디지털 치료기기 사용에 관한 상담을 받아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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