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1930~2014)는 사람이 왜 범죄를 저지르는가에 대한 해답을 경제학으로 찾아내려 한 학자다. 베커는 범죄 행동 역시 비용과 편익에 기반을 둔 경제 행위의 일종으로 봤다. 즉 범죄를 통해 얻는 이득이 체포 가능성이나 체포 후 받을 처벌보다 높다면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주창한 ‘합리적 선택 이론’은 인간을 비용·편익에만 반응하는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존재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장기간 거센 반발을 샀다. 하지만 각자도생이 인생의 지침이 돼버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베커의 주장은 뒤늦게나마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 예컨대 ‘사기’로 대표되는 민생 침해 범죄가 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설명하기에는 그의 이론이 제격이다. 한국에서 사기 범죄를 저질러 체포될 경우 받을 불이익과 사기로 얻을 이득을 따져보면 사기를 치는 게 경제적으로 훨씬 수지타산이 맞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수많은 서민 피해자를 양산한 전세사기와 관련한 최근 판결들을 보자. 대전에서 ‘무자본 갭 투자’로 집을 마련한 후 세입자 26명으로부터 26억 원 이상의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30대 A 씨는 17일 열린 2심 재판에서 1심과 같은 징역 4년 형을 받았다. 이변이 없는 한 4년 형이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19일에는 여러 명이 공모해 사회 초년생 84명을 상대로 73억 원 이상을 편취한 전세사기 일당 4명이 각각 3~7년 형을 선고받았다. 전세사기의 피해자 규모가 99명으로 늘고 피해 금액이 205억 원까지 불어난 사건에서도 주범은 10년, 공범들은 7년 형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이 사건을 다룬 17일자 기사에는 “200억 원에 7~10년이라면 해볼 만한 장사 아니냐”는 댓글이 수없이 달렸다. 실제로 이들 중 일부는 교도소에서 몇 년 사는 것 정도는 문제없다며 범죄에 가담했다고도 한다.
형벌이 어떤 목적을 가져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이론도 논란도 많다. 범죄의 종류나 범죄자의 특성에 따라 엄벌주의가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다만 적어도 사기죄에 한해서는 너그러운 처벌이 범죄를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 정설에 가깝다. 이런데도 우리 법의 형량은 300억 원 이상의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도 가중처벌을 포함해 최대 13년 형을 선고하도록 권한다. 범죄자와 국가, 합리적 선택을 하고 있는 건 대체 어느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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