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란 건 불가사의한 일이죠. 처음 봉준호라는 사람이 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렸고 그즈음에 여러 가지가 맞아 떨어져 그 상을 받게 되었으니까요. 아카데미상 수상을 기쁜 사고라고 생각하면서 내 일상을 살 수 있는 감사한 나이가 되어 좋았어요.”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76). 그의 이름은 198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 가족의 감동적인 드라마를 다룬 영화 ‘미나리(2020)’를 통해 세계 무대에 오르게 됐다. 이후 4년 만에 윤여정은 개와 사람의 따뜻한 유대를 다룬 영화 ‘도그데이즈’를 통해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세계적인 상을 수상했지만 여전히 소탈한 모습을 보인 윤여정은 “나이가 들다 보니 여유가 생겼다”면서 “정리하는 나이에도 아직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지는 영화는 동물병원의 건물주 ‘민상(유해진 분)’과 동물병원 수의사 ‘진영(김서형 분)’, K팝 작곡가 부부 ‘선용(정선화 분)’과 ‘정아(김윤진 분)’ 등 다양한 인물들이 개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다룬다. 인물들은 어딘가 결여되어 있다. 민상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며 따뜻함을 잃어버렸고, 선용과 정아는 아이를 입양하지만 마음의 거리를 좁히기가 쉽지 않다. 밴드 리더인 ‘현(이현우 분)’은 갑작스럽게 떠난 연인 대신 그가 키우던 반려견을 맡게 되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겪는다.
개는 인물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연결시키는 이음새 역할을 한다. 현은 반려견과 가족이 되고, 민상은 유기견 ‘차장님’을 통해 인간적인 면모를 되찾게 된다. 윤여정은 외롭게 살아가던 건축가이자 반려견 ‘완다’를 잃어버린 ‘민서’ 역을 맡았다. 민낯으로 가끔 혼자 배달 음식을 시키는 민서에게 완다는 삶의 유일한 낙이다. 그런 완다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 배달 라이더 ‘진우(탕준상 분)’와 가까워진 민서. 이들은 수십 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어 우정을 쌓는다.
여러 작품에서 빛나듯이 윤여정의 강점은 솔직함이다. 그는 “나는 쭉 솔직했다. 그러나 정직한 것과 솔직한 건 다르다. 솔직해서 남한테 무례할 수는 있다. 경계를 잘 타야 하는데 늙었으니까 품위 있게 하려 한다”고 말했다. 윤여정이 쌓아온 어른의 풍모는 영화에서도 관객에게 진솔하게 전달된다. 진우에게 “넌 안 늙어봤겠지만 난 젊어봤잖니”라며 조언을 건네는 민서의 모습에서도 거부감 대신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전히 윤여정은 “대본을 미련할 정도로 보고 또 보면서 그 인물이 되려 하는” 노력파 배우다. “인생은 버티는 것이죠. 여러분에게 각광받기 시작한 지가 2~3년밖에 되지 않았고, 그 전엔 너무나 힘들게 살았어요. 박찬욱 감독이 내게 ‘‘미나리’에서 선생님이 한 연기는 자다가도 할 수 있는 연기가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그건 일종의 칭찬이죠.”
김덕민 감독과의 인연으로 ‘도그데이즈’에 출연하게 됐다는 그는 차기작으로 독립 영화를 예고했다. 그는 “다양성 있는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인구 5000만 국가에서 1000만 영화는 기이한 현상”이라면서 “차기작은 노인들의 이야기를 경쾌하게 풀어낸 작품”이라고 밝혔다. 다음달 7일 개봉. 1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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