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고3 수험생과 N수생에게 적용되는 2025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공식 발표함에 따라 의료계가 총파업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의협은 27차례에 걸친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진정성과 유연성을 갖고 협상에 임했다. ‘한 명도 증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며 “끝장 토론을 해서 숫자(증원 규모)를 정하자고 제안해도 무반응으로 일관하더니 (정부가) 끝내 의료계와의 신뢰를 저버렸다”고 밝혔다.
◇ 단번에 2000명 증원? 의료계 패닉…의협, 투쟁 모드 전환
의협은 의대 증원 규모 발표를 하루 앞둔 5일 긴급 상임이사회를 소집해 대응책을 논의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 증원을 밀어붙일 경우 현 집행부가 전원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오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의대 증원 규모가 공개된 직후 이 회장 등 집행부는 예정대로 총사퇴했다. 의료계 각 단체들은 파격적인 증원 규모를 접하고 대혼란에 빠졌다. 의협은 임시 대의원총회를 소집해 이른 시일 내에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의협 전 회원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단체행동 관련 설문 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비대위 차원에서 집단 휴진 등 의료계 총파업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의협은 이날 기자회견과 동시에 서울 모처에서 열린 28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보건복지부와 마주 앉았다. 의대 증원 규모 발표를 앞두고 마지막 협상 자리가 마련된 셈인데 양측이 각자 입장만 되풀이한 채 4분여 만에 퇴장하면서 회의는 사실상 파행했다.
◇ 전공의 움직임 예의주시…일선 병원들도 파업 대비 움직임
설 연휴 이후 의협 비대위 주도로 의료계 총파업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의료계 안팎에서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의대 증원 규모 발표를 하루 앞둔 5일 단체행동을 시사하는 설문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대전협이 전국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 1만여 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8.2%가 정부의 의대 증원 시 파업 등 단체행동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대전협에 가입된 전공의는 1만 5000여 명이다. 대전협은 의료계가 파업 등 집단행동을 할 경우 가장 파급력이 큰 의사 집단으로 거론된다. 이번 조사에서 소위 ‘빅5’로 불리는 서울 상급종합병원 5곳(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에 소속된 전공의 가운데 단체행동에 참여하겠다는 비율은 86.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협은 12일 온라인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고 의료 현안 대응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빅5를 중심으로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대형 병원들은 설 연휴 이후 진료 차질을 막기 위해 파업 참여 여부를 면밀히 살피며 분주하게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복지부는 이날 국민 생명·건강에 위해를 주는 행동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한다는 원칙하에 ‘의료법 제59조’에 따라 의협 집행부 등에 대해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내렸다. 정부는 명령을 위반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위협을 주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행정처분·고발 조치 등을 통해 법에서 규정한 모든 제재 조치를 내릴 방침이다.
◇ 의료계, 2020년 의약분업 이후 세 차례 집단휴진…4번째 총파업 나서나
의협이 정부 정책에 반발해 의사 집단 휴진을 주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의료계는 2000년 의약분업, 2014년 원격의료, 2020년 의대 입학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추진을 두고 세 차례 대규모 총파업에 돌입했다. 의약분업은 환자 진료와 전문의약품 처방은 의사가 담당하되 조제 및 판매는 약사가 담당하게 하는 제도다. 정부가 의약품 오남용을 막는다며 의약분업 도입을 추진하자 전국 의사들은 “약사들에게 의약품 조제를 맡길 수 없다”며 처음으로 집단행동을 강행했다. 2000년 2월 동네 의원들을 중심으로 집회와 1차 집단 휴진에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10월까지 총 5차례 집단 휴업과 폐업을 벌이면서 의료 공백으로 인한 국민들의 불편은 컸다.
당시 검찰이 의사들의 파업을 불법 집단행동으로 규정하고 의협 지도부 소환 조사에 나서는 등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이보다 기간은 짧지만 2020년에도 의약분업 이후 최대 규모로 의료계 파업이 진행된 바 있다. 2020년 의료계의 반발을 샀던 의대 증원 규모가 10년간 4000명이었음을 고려할 때 단번에 2000명을 늘리겠다는 현 정부의 기조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자아내는 모양새다. 다음 달 말 의협 차기 회장 선거가 예정된 만큼 강경파를 중심으로 투쟁 수위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집단행동에 나설 경우 “또 국민을 볼모로 하나”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제정된 의료인면허취소법이 총파업 규모의 변수다. 의료법 개정으로 범죄에 구분 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최대 10년까지 의료인 면허 취소가 가능해진 만큼 투쟁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는데도 파업할 경우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의협은 “2021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고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전공의 의대생 우선 보호 대책을 마련해 파업으로 법적 문제가 발생하면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대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이은빈 변호사(하모니 법률사무소)는 “정부의 업무 개시 명령을 거부하면 벌칙 조항에 의거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때 징역형 등을 받게 되면 집행유예라고 하더라도 면허취소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이은빈 변호사(하모니 법률사무소)는 “정부의 업무 개시 명령을 거부하면 벌칙 조항에 의거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때 징역형 등을 받게 되면 집행유예라고 하더라도 면허취소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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